버려지는 슬픔 - 어느 앵무비둘기의 사연
버려지는 슬픔 - 어느 앵무비둘기의 사연
  • 승인 2018.10.1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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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
교육학박사
잊으려고 애쓰는 사람과 잊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느 처지가 더 안타까울까요? 세상사 헤아릴 수 없고 여러 사람이 부대끼다 보니 이러한 일도 일어나겠지요.

이러한 사람들의 변명을 들어보면 여러 가지가 나올 것 같습니다.

‘잊을 수밖에 없었다’, ‘잊어버리고 싶다’, ‘잊어야만 한다’, ‘잊는 것이 상책이다.’ 등의 사람이 있을 테고, 거기에 비해 ‘내가 어찌 잊혀지는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잊혀져야 하는 것이 과연 나의 운명이란 말인가’, ‘이것은 정말이지 운명의 장난이다’, ‘좋다, 너가 나를 잊기 전에 내가 먼저 잊어주마.’ 등의 다양한 반응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는 모두 인연(因緣)이라는 굴레를 덮어씌우겠지요.

그런데 물건의 경우는 어떠할까요? 물론 물건에도 나와 인연이 오래 가는 것이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겠지요. 무생물이 아니라 생명체인 경우에는 더욱 복잡한 감정이 있겠지요.

일전 모 텔레비전 방송에 따르면 서울의 한 주택가에 자리 잡은 편의점 문 앞에 새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사람이 다가가도 도망갈 생각은커녕 애절하게 쳐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 새는 날개를 다친 데다 제대로 먹지 못하여 비쩍 말라있었습니다. 이를 안쓰러워 한 주인이 과자 부스러기를 새 앞에 놓아주었습니다. 허겁지겁 먹이를 먹은 이 새는 금방 꼬박꼬박 졸기 시작하였습니다. 피곤에 찌든 모습이 역력하였습니다.

주인은 빈 종이상자 안에 새를 담아 그늘에 놓아주었습니다. 그로부터 이 새는 이 편의점을 맴돌기 시작하였습니다. 가게 안으로 들어와 돌아다니기도 하고, 바닥에 똥을 누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손님들이 얼굴을 찌푸리는 일까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주인은 틈날 때마다 새를 밖으로 쫓아내었습니다. 그래도 자꾸만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은 주인이 손을 내밀자 손바닥 위로 올라오기까지 하였습니다.

새 전문가를 불러 감식을 받아보니 이 새는 ‘앵무비둘기’라는 새였습니다. 비둘기를 애완용으로 개량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 새는 멀리 날지 못하도록 날개가 반쯤 잘린 상태였습니다. 이른바 윙 트리밍(wing triming)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니 누군가가 집에서 기르던 것이었습니다.

이에 가게 주인은 새를 잃어버린 주인이 안타까워할까 봐 ‘흰 앵무비둘기 주인을 찾습니다.’라는 쪽지까지 가게 앞에 내다붙였습니다. 그러나 서너 달이 지나도록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전문가들은 날개가 잘린 상태로 고양이를 비롯한 위험한 포식자들을 피해 이 가게에까지 왔다면 3,4 킬로미터 안에 이 앵무비둘기가 전에 살았던 집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수소문해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고, 또한 윙 트리밍이 조악(粗惡)하게 이루어진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전 주인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는 결론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이에 가게 주인은 사람 키 높이의 새장을 만들어 함께 생활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제 이 새는 새 보금자리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가게 주인은 더러 새를 꺼내어 어깨 위에 얹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새는 떨어지지 않고 함께 손님맞이를 하곤 합니다.

비록 말을 할 수 없는 새라고는 하지만 함부로 날개를 자르는 등 남의 삶에 끼어들어 이러 저리 횡포를 부리다가 끝내는 위험한 길거리로 내다버리는 일에 대해 여러 가지 비감(悲感)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도 수많은 새들이 사람들에 의해 함부로 날개가 잘리고 염색을 당하는 등 학대를 당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취미생활이라고 하지만 새들에게는 목숨이 달린 문제입니다. 그러다가는 끝내는 버림당하고 마니 그 입장은 얼마나 억울하고 한스럽겠습니까?

세상 만물이 다 나와 똑같은 운명인데 말입니다. 이제 이러한 슬픈 일은 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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