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행진
바보들의 행진
  • 승인 2018.10.2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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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바보 같지 않나요? 부정한 이들이 정의를 부르짖고, 정의로운 이들마저 침묵하는 사회를 뭐하고 부르는지 아세요?” 느닷없는 P의 질문에 당황했다. 그는 근대의 대중예술에 관심이 많아서, 그쪽 관련된 자료만 있다면 전국 어디든 다니면서 구하는 축이었다. 한때 독립영화를 제작하던 그는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익명 제보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와의 통화는 거의 일방적이었다. 그런 그가 만취된 채 전화가 왔었다. 그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민주주의 사회’였다. 그는 1975년에 개봉한 하길종 감독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이라는 작품을 꼭 보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한편, 민주사회는 바보들의 조합이라는 P의 말이 옳을 지도 모른다. 상대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속이고 이용하려는 자와, 이를 알고도 속아주는 자, 그리고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자들이 주인 행세하는 지금이 어쩌면 민주주의 사회일 지도 모른다는 역설적인 표현이 서글프기도 하다. 문학을 하는 자들이라면 알고 있다. 좋은 글을 쓰는 일보다, 팔리는 글을 쓰는 일이 유익한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좋은 글이라고 발표를 해도, 읽는 이가 없으면 출판사에도 민폐고, 서점에도 민폐다. 자비로 출판하는 이들이야 본인 책을 본인이 모두 산 것과 다름없으니, 팔리건 말건 본인의 몫일지 모르나, 인세수입으로 버티는 작가들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바보들이 좋아할 만한 글을 쓰는 것이 옳다. 그러나 순수문학을 부르짖는 이들은 바보들을 일깨우려는 노력을 멈출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도 바보이기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2019년도 문예 진흥기금 공지가 발표되었다. 매년 국가지원사업 공지가 발표될 때마다 궁금해진다. 이들을 누가 심의를 하고 선발하는지 말이다. 상주도서관작가를 선발할 당시에도 뭔가 께름칙한 구석이 없지 않았다. 해당도서관에 문의를 해보면 심의 중에 있다고 하더니, 끝내 선발에 관한 공지는 없었다. 추후 확인해보면 이미 상주작가가 근무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예술인 패스 카드를 처음 시행했을 때 내심 기뻤다. 한때 연이은 군사 장기집권의 시대에 용비어천가를 노래하던 문단의 실세들이 물러가고, 이제야 글을 쓰는 이들에 대한 자존심을 회복해주려는가 해서 말이다. 하지만 정작 예술인 패스를 내밀 곳이 별로 없다. 서울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쓰일 곳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누가 바보일까. 절을 모르고 시주를 한 중앙정부인가. 시주(施主)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어두운 눈을 가진 우리가 바보인가.

국가 지원 공모사업들의 내용을 보면, 대부분 관련 서류들의 서면제출이 불가하다. 거의 온라인으로 서류를 접수하고 있다. 행정의 편익을 위해서이기도 할 것이고,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서 그럴 것이기에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평생 문학 활동을 해 왔지만, 아직도 원고지를 사용하는 원로작가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거나 지인에게 부탁을 하는 수밖에 없다. 어떤 공모사업이건 국민들을 대상하는 하는 지원 사업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온라인에서 공지를 확인하고 지원할 정도의 전산능력을 갖춘 자만이 지원할 수 있다면, 자격요건에 명시해야 한다. 문학 분야에서 컴퓨터는 편리한 도구일 수는 있지만, 능력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알록달록 색을 덧입히고 표지를 아름답게 만든 책이 더 잘 팔린다고 해서 그 작품이 반드시 우수한 것은 아니다. 마케팅적인 요소들을 갖추고 판매에 주력하는 것은 출판사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문학은 ‘맛’을 추구하는 분야가 아니다.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현실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위한 일이다. 물론 희망을 길어 올리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가치를 가진 예술 분야는 문학 외에도 그야말로 다양하다. 존중받아 마땅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국가 예산을 집행함에 있어서는, 온 국민이 알 수 있게 투명하고 광범위하게 공지되어야 한다. 국민들이 낸 세금이 이렇듯 유용하고 바르게 쓰인다는 사실은, 알리면 알릴수록 좋은 일이다. 각 지방에 각 분야의 실세들이 자릿값을 톡톡히 하면서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신속한 정보력이다. 그들은 기획단계에서부터 이미 인지하고 예산을 득할 준비를 한다. 눈이 밝은 바보인 셈이다. 그러나 붓 끝에 ‘양심’을 적시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그에 상응하는 심판을 받게 됨을 잊어선 안 된다. 보통 바보들이 가장 잘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멈추지 않고 걸어가는 일이다. 더 잘하는 것은 ‘함께’ 걸어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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