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 익어가는 계절
모과 익어가는 계절
  • 승인 2018.10.2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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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황금만능주의와 몸짱을 추구하던 시대에 아테네 최고의 못생긴 한 사람이 등장했다는데 그가 바로 소크라테스였다. ‘정의의 실천과 지혜의 추구가 진짜 탁월함이다.’라고 외치던 그는 자신의 소망을 이렇게 기도 했다고 한다. ‘신들이시여, 내 내면이 아름다워지게 하시고 내 외적인 재산은 내 내면의 상태와 일치하게 하소서’라고. 이후 미남 제자가 그를 옹호하여 그의 철학을 다시 한 번 보게 되면서 소크라테스는 지지를 받게 되었다는데, 그 제자가 플라톤이었다.

거실 창문을 여니 최고조의 노란 빛깔로 물든 모과향이 물씬 풍겨온다. ‘모과는 백가지 이익이 있고 한 가지 손해가 있다.’는 말이 있는데 특히 요즘같이 초미세먼지로 오염된 기관지엔 모과차만한 것도 없다. 흔히들 못생긴 사람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하지만 모과를 제대로 알고 보면 세 번, 놀란다고 한다. 향은 물론이고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떫은맛과 약효다.

모과향이 짙어가는 계절에 맞춰 ‘점’ 빼기를 시도하기 좋은 계절이다. 보기 싫었던 점을 빼려고 관련 시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 반액세일 등을 내세워 유혹하는 병원들도 덩달아 많아지고 있다고 하니 ‘점’ 제거는 점이 많은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보편화된 시술로 정착되고 있다.

서리가 내리고 푸른 잎이 가지에서 떨어져 나갈 즈음 딸아이는,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을 들여다보며 궁리하는 시간이 잦아졌다. 밤하늘의 별을 헤듯 점의 개수를 세기도 하고 복점인지 흉점인지 인터넷 검색으로 얼굴 점 관상을 살피기도 했다. 화장으로도 쉽게 가려지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또렷해지며 개수가 점점 더 늘어나는 것 같다며 고민이라 했다.

남의 눈에 티끌은 보여도 내 눈의 들보는 안 보인다더니, 서른 해를 키우는 동안 단 한 번도 엄마인 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아이의 얼굴에 점이 많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수박 속 씨앗처럼 검고 크게 드러나 점밖엔 안 보인다며 심각하게 고민을 하는 딸아이에 비해 내 눈엔 전혀 그게 고민이라고는 생각조차 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며칠 고민하던 딸아이는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얼굴가득 온통 반창고를 붙이고 들어왔다. 그리곤 ‘의사선생님 말에 의하면 점은 빼는 것보다는 관리가 더 중요하다’했다며 온 방마다 커튼을 치는 것으로 가을햇살을 차단했다. 하지만 열어 놓은 창으로 모과 향만은 그대로 커튼 사이를 비집고 흘러들었다.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세상, 하물며 여자의 피부는 권력이라고 까지 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외모의 우월이 능력의 우열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우린 종종, 외모를 우선순위에 둔 채 모든 우열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갈 때가 있다. 예전과는 달리 웬만한 스펙으로는 더 이상 변별력을 갖기도 어렵다보니 더 분명하고 손쉬운 차별의 요소로써, 내세울 거라곤 외모밖에 없을 수도 있겠다 싶어진다.

사람들은 종종 ‘제 눈에 안경’이라 말한다. ‘아름다움에 대해 가장 후련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보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란 점을 깨달을 때’라고 할리우드 스타 셀마 헤이엑은 말한다. 남들은 감히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우리의 내면과 같은 곳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고 말이다.

‘캐묻지 않는 삶은 사람이 살 가치가 없다’며 말을 잘 하는 것보다 자신을 성찰하고 돌아보는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한다던 소크라테스의 화두를 내 마음 안으로 툭, 던져넣으며 이 가을, 거울 앞에 앉아 모과 향을 음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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