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유치원 비리, 과연 원장들의 책임인가
사립유치원 비리, 과연 원장들의 책임인가
  • 승인 2018.11.01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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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
‘우리아이 1등 공부법’ 저자
결혼 전 다양한 사교육 시설에서 근무했다. 강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학원에서 근무했는데, 6개월 정도 다녔던 한 학원은 7세 아이들도 함께 가르쳤다.

이름만 학원이지 그 학원의 시스템은 유치원과 동일했다. 아이들은 아침에 셔틀버스를 타고 학원에 도착해서 오전에는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배웠다. 점심이 되면 학원에서 급식을 먹고 오후에는 같은 건물에 있는 피아노 학원이나 영어 학원을 갔다가 2~3시쯤 다시 모여 학습지를 풀고 4시에 집으로 돌아갔다.

유치원과 다른 점이라면 아이들이 놀 공간이 전혀 없이 좁은 상가건물 교실에 하루 종일 갇혀 있어야 한다는 점과 낮잠을 자지 않는다는 정도였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지 않고 학원으로 보내는 엄마들은 아마 ‘7세부터 미리 학습을 시작하면 우등생이 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고 믿었던 것 같다. 뛰고 싶고 놀고 싶은 아이들을 하루종일 책상에 앉혀놓으니 아이들은 온 힘을 다해 벽에 몸을 부딪치거나 서로 심하게 싸우는 등 부작용이 많았다.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흡사 야생동물을 케이지 안에 가둬놓은 사육사처럼 죄책감을 느꼈는데, 그런 말을 엄마들한테 한 적은 없다.

이름은 학원이지만 다른 유치원이 하는 것은 비슷하게 다 했다. 원복과 가방도 있고, 견학과 소풍도 가고, 졸업식도 있었다. 급식을 먹고 노래를 배웠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원장에게는 부수입을 올릴 수 있는 기회였다. 예를 들어 소풍을 가면 사진사가 따라가서 사진을 찍고, 견학을 가면 비디오로 촬영해서 사진과 비디오테이프를 엄마들에게 판매했다. 그런데 그 비용은 대략 원가의 3배에서 10배까지 됐다. 만약 비디오테이프가 하나에 3천원이라면 엄마들한테 판매할 때는 1만5천원을 받는 식이다.

그 돈을 걷어야하는 사람은 교사이므로 나는 “원장님, 엄마들이 가격 너무 비싸다고 할 것 같아요”라고 말해보기도 했다. 그때마다 원장은 나에게 뭘 모른다는 표정으로 “박선생, 나는 양심적으로 받는 거야. 옆의 00학원 원장은 5만원씩 받아”라고 말했다. 그때는 원장도 교사들도 그게 불법이거나 잘못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식당 주인이 자기 식당의 음식값을 5천원 받든, 5만원 받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식당을 선택하고 그곳에서 밥을 먹은 사람은 주인이 정한 돈을 내야한다.

엄마들 역시 그 사실을 모르고 있지 않았다. “선생님, 왜 이렇게 비싸요?”라고 묻는 엄마들이 간혹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다른 곳도 그러니까’라고 생각하며 돈을 냈다. 내가 근무했던 곳이 유치원은 아니었지만 사립유치원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지난 30년 간 자영업자로 살았다.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어서 어떻게 쓰든, 그건 그들의 자유였다. 그러니까 어쩌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비리유치원 명단 공개’의 대상이 된 원장님들은 자신이 번 돈으로 명품 가방을 사고, 아들의 유학비를 댄 것이 왜 잘못인지 의아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들은 국가보조금을 받았다. 국가의 세금으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은 범죄다. 그러니 이 문제는 100% 유치원 원장님들의 잘못일까?

국가 역시 이들이 자영업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국가의 세금을 집행할 때는 이들에게 “이제까지는 자영업이었지만 이제부터는 국가의 세금이 지원되므로 회계를 투명하게 해라. 어떻게 돈이 쓰여 지는지 철저하게 감사할 것이다”라고 충분히 알리고, 제대로 된 감사를 했어야 했다. 돈을 줄 때는 아무 말도 없다가, 그 어마어마한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감사도 안하고 방치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유치원 원장들만 적폐의 대상인 것처럼 몰아붙이는 정부의 태도는 비겁하고 파렴치하다.

사립유치원 원장 편을 들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그들이 교육자라고 생각지 않는다.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단순한 수입원으로 생각하는 원장들을 너무나 많이 봐왔다. 하지만 이들을 모두 비리집단으로 몰아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제라도 바른 가이드를 정하고, 이들이 깨끗한 회계 관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정부가 전국 수천 개의 유치원을 다 운영할 능력도 없으면서 “사립유치원을 다 공립으로 바꾸겠다”는 허황된 구호를 남발하니까 당장 내년에 유치원을 보내야하는 엄마들이 발을 동동 구르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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