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과 진영
이념과 진영
  • 승인 2018.11.01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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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진
한국소비자원 소송지원변호사
최근 중요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여러 건 선고되었다.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이 되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사건이 무려 13년을 끌어 피해자들 승소로 확정되어 언론에 대서특필 되었는데 그 외에도 의미 있고 재미있는 판결이 선고되었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출마하였다’는 전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 부부가 자신들을 ‘종북’이라고 한 변희재 씨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사건 상고심에서 변 씨가 15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한 원심을 깨고 불법행위가 아니므로 손해배상책임이 없다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변 씨가 이 씨 등에 대하여 ‘종북’이라고 발언한 내용 등이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불법행위 여부가 사건의 핵심이고, 여기에는 표현의 자유, 명예훼손, 공적인물론에 관한 법률이론 다툼이 있고, 그와 별도로 이념논쟁까지 포함되어 있어 다양한 결론이 가능한 재판이다.

공적인물은 대중의 관심 대상이고 이러한 자에 대한 정치적 평가, 사회적 평가는 공익성이라는 차원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양하게 진행되기 때문에 일반 사인들에 비하여 좀 더 자유로운 비판이 가능하여 공적인물에 관한 표현행위가 공익과의 관련성이 크다면 명예훼손 영역이 다소 후퇴될 수 있다는 것이 공적인물론이다.

이러한 점을 바탕으로 대법원은 ‘종북 이라는 표현은 의견표명이나 의혹 제기에 불과하여 불법행위가 되지 않거나 원고들이 공인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위법하지 않다’고 하면서 ‘정치적·이념적 논쟁 과정에서 통상 있을 수 있는 수사학적인 과장이나 비유적인 표현에 불과한 부분에 대하여 법적 책임을 지우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불법이 아니고 불법행위가 아니라면 손해배상책임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이제 이 판결의 이면에 숨겨진 ‘이념과 진영의 논리’를 더해보자.

통상적으로 진보적인 이념을 가진 대법관이라면 ‘표현의 자유’를 넓게 인정할 것이고, 이 건에서 ‘표현의 자유를 넓게 인정하여 불법행위가 아니다’라고 판결할 가능성이 높다. 8명의 대법관이 불법행위가 아니라고 판결하였고, 5명의 대법관은 불법행위라고 소수의견을 내었다. 그런데 명예훼손이므로 불법행위라고 판단한 소수의견자 중 이동원, 민유숙 대법관을 제외한 박정화, 김선수, 노정희 대법관 3명은 명백한 진보 성향의 대법관인데 이 분들이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제한적으로 해석하였다는 것은 의외이다.

그 해답을 억지로 찾아보자. 김명수 대법원장은 진보진영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하였고, 소수의견자 5명 전부 2017. 이후 김명수 대법원장이 추천한 대법관들로 김선수 대법관은 민변 회장, 김명수 대법원장, 박정화, 노정희 대법관은 진보 성향의 판사들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이 사건 원고들 이정희 부부는 통합진보당 소속으로 역시 진보 성향 인사이다. 결국 진보 성향 대법관 4명과 이정희 부부는 같은 진보 진영으로 ‘우리’라는 연대의식이 형성되었고, 우리 진영이 공격받았으므로 진영 보호를 위하여 대법관들도 힘을 보태어 표현의 자유를 넓게 인정하여야 할 진보 이념은 작전상 일단 후퇴시켜 ‘종북’이라는 표현을 불법행위로 보아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되 대법원장과 자신이 임명한 5명 전원이 불법행위를 인정하는 것은 너무 눈치가 보이므로 대법원장 1명 정도는 불법행위가 아닌 것으로 의견을 낸 것이라고 억지 추측을 할 수 있다. 만일 이 건 소송에서 원고가 극우 인사이고 진보 진영에서 ‘친일이다’라고 표현한 것이 문제되어 유사한 재판이 진행되었을 경우에도 위 3명의 대법관이 불법행위라고 판결하였을지 의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공사기업 직원 임용, 공직사회, 정치 등 어디에도 패거리 문화가 없는 곳이 없는데 법 이론이나 이념이 아닌 진영논리로 판결이 선고된다면 역시 여기도 패거리 문화가 있구나 라고 오해 받을 수도 있다.

가장 공정하고도 고매한 법률심인 대법원, 그것도 전원합의체에서도 진영 논리가 통한다면 걱정되지 아니하지 아니한다고 할 수도 없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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