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답잖은 미래기술에 대한 회의(懷疑)
시(詩)답잖은 미래기술에 대한 회의(懷疑)
  • 승인 2018.11.04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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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2000년 7월경쯤 실시된 의약분업의 캠페인 중에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슬로건이 있었다. 이렇게 기막힌 대구(對句)가 또 있을까. 한때 유행어처럼 번졌던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불조심 표어만큼이나 빈틈이 없다. 시행된 지 이십여 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현실은 어떠한가. 환자들은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가서 약을 구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대신 동네약국들이 대부분 병원이 있는 곳으로 이전하거나 문을 닫는 기현상도 생겼다. 유명 병원 주변에는 약국이 몰려있다. 의약분업의 장단점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일부 병원과 약국의 유착과 각종 폐해의 가능성은 늘 도사리고 있다. 문명의 이기는 이렇듯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특성을 갖게 마련이다.

㈜한국미래기술의 양진호회장이 연일 화제다. 얼마 전에 선보인 첨단 로봇기술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의 상징이었다. 이와는 상반되는 양회장의 엽기적인 행각들로 떠들썩하다. 계기가 되었던 직원 폭행사건 동영상을 본인이 촬영을 지시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개인이 자료를 업로드하고 다운로드하던 P2P음원사이트였던 ‘소리바다’는 아주 오래전에 이용한 바가 있으나, 위디스크라는 회사가 그렇게 유명한 곳이라는 것을 필자는 몰랐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매한 상품을 받아보면 박스 안에 웹하드 사이트들의 상품권이 여러 장 들어 있지만, 눈여겨보지 않고 버렸기 때문이다. 그 중에 파일노리라는 사이트는 들어본 것 같기도 하다. 이 두 회사 모두 웹하드 카르텔 유통을 주도하던 업체이고 실소유주가 양회장이라고 했다. ‘위디스크’와 ‘파일노리’는 불법 동영상을 유포하는 것으로 연간 ‘210억’과 ‘160억’의 매출을 올렸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시답잖다’는 말이 있다. 이는 ‘실(實)답지 않다’는 뜻을 가진 형용사가 있다. 보잘것없어서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들이 성업 중이었던 것은, 시답잖은 호기심과 관음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자가 많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필자는 알고 있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이다. 개같이 벌어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을 보면 그냥 ‘개’가 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의 새로운 행적이 날마다 새로워서 충격적이다. 그의 아내와 대학동창인 모교수와의 불륜을 의심하여 폭행했던 사건도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구타에 그의 덩치 큰 친동생도 가담했다는 것이고, 가래침을 뱉고 이를 핥아먹게 했다고 한다. 게다가 피해자의 주머니에 이백만 원을 구겨 넣는 모욕을 주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다고 하니 할 말을 잃게 한다. 그는 악마의 충견(忠犬)이 되어 버렸던 걸까.

세상이 병들어가고 있으니, 언젠가는 종말이 올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이비교주들에게 여지를 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여태까지 묵인했던 그들의 범죄가 이제라도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정의’가 숨을 거두지 않았다는 희망이다. 이런 병적인 회사들이 나비가 되지 못하고 나방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모두가 이를 방관한 공범이기 때문이다. ‘굿다운로더’와 상반되는 개념이 ‘헤비업로더’다. ‘굿다운로더’는 영화진흥위원회에서 2011년도에 본격적으로 광고를 했는데, 말 그대로 ‘돈 내고 영화보자’는 것이 취지다. 그에 반해서 ‘헤비업로더’는 방대한 불법자료를 웹하드 업체에 공급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양진호라는 인물은 상징적일 뿐, 수많은 양진호의 조력자들이 일조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귀책사유가 가장 많은 이는 사용자들이다. 아무도 이용하지 않으면 이런 천인공노할 사이트들이 존속할 수 있었겠는가. 웹하드 업체들이 처음부터 불법영상물을 취급했던 것은 아니다. 각 개인들의 PC에 저장할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자료들을 용량 제한 없이 올리고, 언제든 내려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던 것이 처음이었다. 그러던 것이 이를 악용하여 성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었고, 새로운 자료들을 갈구하고 이에 대한 비용을 기꺼이 지불해온 사용자들이 많았다는 것이 그들의 제단에 재물을 바치는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불법영상물의 피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 고인의 자료를 삭제해주는 도의적인 노력대신 ‘유작’이라는 제목으로 개처럼 물고 돈을 벌어들였다. 그들에게는 도의(道義)라는 게 애초에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다. 활과 칼로 살아있는 닭의 목을 치는 것이 대수가 아니다. 여성을 성의 노리개쯤으로 치부하고 상품화하는 남성들의 눈과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는 것을 몰랐던 일이 더 무서운 일이다. 양진호, 그가 사람의 시(詩) 한 구절만이라도 가슴에 품었더라면, 이런 시(詩)답잖은 일은 저지르지 않았을 거라는 안타까움이 더해지는 가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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