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법정구속인가?
누구를 위한 법정구속인가?
  • 승인 2018.11.0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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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둥
대구시의사회 정보통신이사
얼마 전 수원지방법원은 2013년 5월, 횡경막 탈장의 합병증으로 8세 환자가 사망한 불행한 사건과 관련하여 그 진료 과정에 연관했던 3명의 의사 모두에게 업무상 과실로 환자의 생명을 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에서 구속하는 판결을 내렸다. 의료인으로서 더욱 완벽한 진료를 통해 다시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음은 자명하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3명의 의사가 정확한 진단을 하지 못했다고 해서 구속으로 책임을 지우려 했다. 인체가 가지는 각 개인별 상이한 특성과 상황의 차이가 빚어내는 정보의 불일치로 의학적 판단이 완벽하지 못하고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판결이라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의료과실이 강력히 의심되는 사안에 대해 과정상의 과실 유무를 객관적인 데이터에 근거해서 면밀히 따지고 과실이 확인된 경우 잘못된 결과에 대한 반성,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과 함께 그에 합당한 의료진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보상 또한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판결과 같이 과정상 고의성이 명백하게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결과만을 보고 의료진에 대한 처벌의 강도를 일반적인 상해사건의 경우처럼 적용하는 경우가 선례로 남는다면, 자칫 의료분쟁을 지나치게 남발하는 풍토를 낳게 될 것이며 이는 곧바로 방어진료의 확대로 이어져 심각한 의료환경 왜곡현상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될 것이다. 민사가 아닌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전제는 의사에게 굉장한 공포라는 점을 잠재적 의료 수요자인 모든 국민들께서 꼭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자신이 구속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중환자진료를 기피하는 의사를 어찌 탓할 수 있겠는가?

의사의 진료 과정은 불확실성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단계적으로 최종 진단에 접근해 나가는 하나의 수사과정과 같은 것이다. 살인 사건을 수사하고 범인을 잡아야하는 강력계 형사가 범인을 놓쳤다고 해서 좌천이나 강등 같은 징계를 받는 것이 아니라, 법정에서 구속시키고 수감하는 형벌을 내린다면 과연 능력 있는 형사들만 강력계에 남게 될까, 아니면 어떤 경찰도 강력계 형사는 하지 않으려고 하게 될까?

실제로 국제적으로도 의료분쟁과 방어진료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우려가 많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의 의료진도 의료소송에 방어적으로 진료하다 보니 환자에게 이득을 주기위한 진료가 아니라 오진을 피하기 위한, 즉 법적책임을 피하기 위한 진료를 하게 된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고, 미국의 경우 전체 의료비용의 43%가 방어진료에 소모된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이다. 의료소송에 대한 두려움에 위축된 의료진이 지나치게 광범위한 검사를 하게 되고 더 많은 시간적·인적 자원을 소모함에 따라 그만큼 비용이 높아지게 된 결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더 큰 문제는 상대적으로 의료과실과 의료사고를 직·간접적으로 접할 확률이 높은 중환자 진료와 외과계열 전공을 기피하는 젊은 의사들의 경향이 더욱 심각해 질 것이란 점이다. 초 저수가에 신음하는 와중에도 제 살 깎아가며 중환자 치료에 전념하고 있는 이들에게 다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환경을 조성해서 응원해도 모자라는 판국에 법적 처벌로 의사를 위협하는 것이 환자의 안전에 도움이 되는가 의문을 가지고 문제제기에 나서야 하는 주체는 정작 의사들이 아니라 바로 의료 소비자인 국민 여러분들이 아닐까?

캐나다에서는 지난 100년 동안 의료과실로 의사를 형사처벌한 사건이 단 1건 밖에 되지 않는다. 형사범죄는 행동에 명백한 잘못이 있을 때 처벌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3명 의사들은 사람을 진단하고 치료하겠다는 의도만큼은 분명했다. 선한 의도로 의료행위를 한 것이지 고의로 나쁜 행동을 한 것이 아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에게 잘못을 묻고 있는 대한민국의 법적 풍토가 사회 전반 곳곳에서 비판받고 있으며 그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 또한 높다. 이번 판결이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반한다는 점에서도 큰 아쉬움을 남기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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