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우 칼럼] 개인 양심에 좌지우지되는 국방의무
[윤덕우 칼럼] 개인 양심에 좌지우지되는 국방의무
  • 승인 2018.11.0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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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우 주필 겸 편집국장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뜻이다. 요즘 민심이 들끓는 대법원의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이 그렇다. 양심적 병역거부. 14년 전에는 분명 유죄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권력이 바뀌어서 그런지 지엄하신 대법관들도 예외가 아닌 듯 하다. 그래서 세상은 역시 오래살고 볼 일이다. 온갖 법률적 용어로 판결요지를 설명했지만 국민들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의아하다. 법률적 지식이 없는 국민들은 세상이 바뀌니까 완장찬 사람들이 법치를 빙자해 권력놀음이나 이념놀음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품기도 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1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 규정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 ‘집총거부’라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군대 입영을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병역거부 사유’에 해당하므로 형사처벌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현역병 입영을 거부했다가 병역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모(34)씨의 상고심에서 대법관 9(무죄) 대 4(유죄) 의견으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창원지법 형사항소부에 돌려보냈다. 판시사항은 이렇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피고인이 종교적 양심을 이유로 입영하지 않고 병역을 거부한 사안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병역의무의 이행을 일률적으로 강제하고 그 불이행에 대하여 형사처벌 등 제재를 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를 비롯한 헌법상 기본권 보장체계와 전체 법질서에 비추어 타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정신에도 위배되므로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면 이는 병역법 제88조제1항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이와 달리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한 사례” 라고 했다.

이날 김소영·조희대·박상옥·이기택 대법관 등은 반대의견을 냈다. “기존 법리를 변경해야 할 명백한 규범적, 현실적 변화가 없음에도 무죄를 선고하는 것은 혼란을 초래한다”는 것이 반대이유다. 특히 김소영·이기택 대법관은 “대체복무제 도입으로 해결해야 할 국가 정책의 문제”라며 “이 사건은 헌재 결정으로 사실상 위헌성을 띠게 된 현행 병역법을 적용해 서둘러 판단할 것이 아니라 대체복무제에 대한 국회 입법을 기다리는 것이 마땅하다”며 다수의견을 반박했다. 조희대·박상옥 대법관도 “(다수의견) 심사판단 기준으로 고집하면 여호와 증인 신도와 같은 특정 종교에 특혜가 될 수 있다”며 “이는 양심 자유의 한계를 벗어나고 정교분리원칙에도 위배돼 중대한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반대의견의 강도 높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김명수 대법원장과 권순일·김재형·조재연·민유숙·박정화·김선수·노정희·이동원 대법관 등 다수인 9명의 대법관이 낸 무죄 의견이 최종결론이 됐다. 이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유죄를 선고한 2004년 7월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14년 3개월 만에 변경됐다. 1949년 8월 형법에 병역기피 처벌조항이 규정된 이후로 7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종교·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형사처벌이 사실상 중단된 셈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이른바 양심적 병역거부는 종교적·윤리적·도덕적·철학적 또는 이와 유사한 동기에서 형성된 양심상 결정을 이유로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의 이행을 거부하는 행위다.

이번 대법원의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은 국방의 의무를 신성한 4대 의무 중 하나로 여겼던 국민들의 가치관을 한순간에 흔들어 놓았다. 무죄판결을 납득하기 어려운 국민들의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군필한 국민들은 물론 입영을 기다리는 많은 청년들과 그들의 부모들은 허탈하기만다. 한때 ‘소는 누가 키우노’라는 개그용어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제 ‘나라는 누가 지키노’가 유행할지도 모른다.

이번 판결요지에서도 설명했듯이 헌법상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 그리고 국민에게 부여된 국방의 의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가의 존립이 없으면 기본권 보장의 토대가 무너진다. 국방의 의무가 구체화된 병역의무는 성실하게 이행해야한다. 병무행정 역시 공정하고 엄정하게 집행해야한다. 헌법이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고 해서 이와 같은 가치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6.25전쟁에 참여했던 학도병 등 수많은 군인들은 비양심적인가. 이 강산을 지키기 위해 총칼을 들고 외적을 막아냈던 수많은 백성들은 비양심적인가. 국립묘지에 안장된 호국영령들은 비양심적인가. 군대에 가면 군법사(불교), 군종신부(천주교),군목(개신교)등 군종들이 있다. 이들 종교가 집총을 거부하고 양심적 병역거부를 외치면 대법원은 어떤 판결을 내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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