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이 만난 작가] 이희령, 강렬한 에너지, 비움에 대한 갈망의 분출
[서영옥이 만난 작가] 이희령, 강렬한 에너지, 비움에 대한 갈망의 분출
  • 서영옥
  • 승인 2018.11.0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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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한지 찢어 올리고
물감과 먹 번갈아가며 채색
강렬한 색 거친 붓터치 특징
에너지를 표출하는 듯 하나
한지 찢으며 내면 비우기도
이달 키다리갤러리 전시 예정
이희령-비움-힘의존재
이희령 작 ‘비움-힘의 존재’

 

서영옥이 만난 작가- 이희령

10월 말경이었다. 작가의 작업실에 가기 위해 대구 대명동 한적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계절은 공평하게 후미진 골목에도 가을 색을 고루 뿌려놓았다. 양지쪽에 무리지어 얼굴 내민 하얀 소국은 작가가 깔아놓은 융단인 줄 알았다. 담장 너머 붉은 감이 등불처럼 계단을 밝혀주던 집 2층에 오르니 가을의 결실 같은 작품들이 즐비하다. 작가 이희령의 거처이자 작업공간이다.

2012년 9월이었다. AA갤러리 초대전에 전시한 이희령의 작품들은 색이 무척 강렬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표가 붙은 작품 앞에서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열정을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로부터 2년 후(2014년 8월 15일), 정식으로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에도 작가의 내면은 단단했고 열정의 온도 또한 높았다. 며칠 전에 방문한 그녀의 작업실에서는 그간의 작업과정을 재점검한 셈이다. 이희령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25년 전이며 진중함은 한결같다.

지천명(知天命)을 앞둔 이희령에게 작업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필연이자 당연함이며 삶의 중심축이 아닐까 한다. 내밀한 감정까지 오롯이 알아주는 벗이자 기도이고 자기정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내면 저 깊은 곳으로부터 울리는 공명의 기록이라 하면 무리일까. 작가는 그것을 추상화로 나타낸다. 관람객이 쉽게 공감할만한 재현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이희령은 90년대 초 대학을 졸업한 후 지금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평면조형으로 시각화 하는데 몰두했다. ‘에너지’와 ‘휴머니즘’은 이희령이 일관되게 고민해온 작업의 텍스트이다. 끊일 줄 모르던 실존에 대한 물음은 그녀의 작업이 로고스(논리)와 에토스(인격) 파토스(감성)를 아우르는 일임을 짐작하게 한다.
 

이희령-비움-2
이희령 작 ‘비움’

그간의 작업과정을 통틀어볼 때 표현방식에서는 혁혁한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잔잔한 호수 같은 행보였으나 내면에 이는 에너지는 일렁이는 파도에 견주어진다. 이러한 그의 작품세계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재료의 이해가 불가피하다. 이희령에게 예술적 사유는 몇몇 재료의 조합으로 탄생되기 때문이다. 현재는 캔버스 위에 붙인 한지가 마르면 그 위에 아크릴 물감을 중첩하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밑바탕은 한지이지만 아크릴 물감이 최종 색을 결정짓는다. 한지 위에 아크릴 물감을 겹겹이 올리면 처음보다 강한 색이 우리의 시각을 자극한다. 한지로부터 출발하였으나 한지 특유의 부드러운 발색을 기대할 수 없는 이유이다.

층층이 찢어 붙인 한지의 파편들 사이로 흑백의 줄무늬가 꿈틀댄다. 검은 색과 흰색 줄무늬의 패턴을 보고 혹자는 얼룩말을 연상한다.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자세히 보라고 하면 약동하는 물고기와 운무도 거론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미지가 제 몫을 한 셈이다. 사랑은 보이지 않는 감정이지만 보이는 것들로 존재하듯 이희령의 내면에 이는 에너지 또한 얼룩말과 물고기 운무의 모습으로 움직인다. 마디 없는 소리는 걸림이 없듯이 실체 없는 이미지도 바람처럼 흐른다. 흐르고 흘러서 만나는 곳은 우리의 눈과 마음이다.

흥미로운 것은 아크릴 물감과 어우러진 검은 색 재료의 일부가 먹물이라는 것이다. 서예와 한국화에서는 기본적이 재료이지만 서양화에서 먹은 이질적인 재료이다. 유년기 때 이희령이 처음 그림을 배운 곳은 한국화 화실이었고 당시의 경험들이 스믈스믈 되살아나 현재의 작품에 스며든 것이다. “먹의 향과 사각거리며 닳던 먹 소리가 좋았다”고 하는 그녀의 회상은 캔버스야말로 화가의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살아 숨 쉬는 공간임을 자각하게 만든다. 이희령 작가에게 먹물은 과거로의 회귀와 귀소본능을 자극하는 재료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한지와 먹의 상관관계도 배제할 순 없다. 숨을 쉰다고 할 만큼 유연한 성질을 지닌 한지는 빛이 드나들 만큼 흡수력과 투과력이 탁월하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한지의 이러한 성질을 효용가치로 꼽진 않는다. 대부분 아크릴 물감의 발색에 작품 전체의 느낌을 맡기는 이유는 “은은한 한지의 색감만으로는 강한 에너지를 시각화하기에는 불충분하기 때문” 이라는 것이 그의 대답이다. 한지가 한국정서의 대변체일 것이라는 기대감도 이희령의 작업에서는 접어야 한다. “나의 작업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강렬한 색과 빛 그리고 자유롭고 강한 붓 터치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나의 심적 갈등과 보이지 않는 대상을 나타내는데 있어 어떠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부수적으로 선택되어진 재료가 한지이다.”(작가노트 중)

상하 수직으로 포개어진 붓질과 한지의 조각들, 층층이 쌓인 색채 등, 이희령이 운용한 색과 오브제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지는 기운의 함축이다. 하여 일련의 과정은 에너지의 축적으로 보아도 좋다. “한지를 찢고 바르며 내안의 것들을 조금씩 비워나간다”고 하는 이희령에게 에너지는 힘의 교차이면서도 비움에 대한 갈망의 단면이다. 상실감으로 가득한 시간 속에 번쩍이던 섬광이기도 하다. 이희령에게 에너지는 곧 작업의 원동력인 셈이다. 일련의 행위가 정신적 자유를 찾아가는 여행에 비견된다.

이희령에게 여행은 어디론가 떠남이 아닌 돌아오는 걸음이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오려는 노력이다. 그 노력은 사색과 사유에 가 닿는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여행자다. 몸은 여기 있으나 마음은 여기에 있지 않고, 마음은 거기 있는데 몸은 여기 있을 때, 혼자 있으나 혼자가 아니고 둘이고 셋이다가 온갖 잡동사니가 된다. 혼자이고 싶어도 혼자이기 어렵고 함께이고 싶어도 혼자일 때가 있다. 오롯이 혼자일 때 보인다는 나를 찾아 떠나는 우리는 모두 여행자가 아닐까. 목적지가 다르다고 해도 되돌아오는 곳은 같다. 다다른 곳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삶과 예술의 접점을 찾고 삶의 파편들을 예술적 에너지로 환원시켜 이미지로 드러내는 이희령에게 여행의 귀결점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이러한 여행을 통해 작가는 통찰과 지혜를 구한다. 삶의 본질을 탐색하여 생동감 있게 그것을 전달하는데 주력한다. 큰 진폭 없이 잔잔한 삶을 영위해온 이희령의 예술이 세상의 평안을 비는 기도의 일환이라 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녀가 비움에 대한 갈망과 분출하는 에너지를 하나로 묶어서 작업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것이 담백하고 맑다. 11월 중순 대구 키다리갤러리에서 열릴 초대전(10회 개인전) 준비로 바쁜 그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서영옥ㆍ미술학박사 shunna95@naver.com

 

 

△이희령= 서울코엑스호텔아트페어 핑크전, 파리-현대미술 국제초대전, 부산국제아트쇼, 한·일교류전 등 개인전 9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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