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붙이기의 쓰라림
밀어붙이기의 쓰라림
  • 승인 2018.11.06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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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청
부국장
미국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9개 주에서 최근 대마초 흡연이 합법화 되면서 청소년들의 대마초 구매를 막을 제재 수단이 없어 청소년들에게 대마 흡연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마초를 흡연한 뒤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가 지난해보다 28%나 늘어났고, 대마초 흡연으로 환각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내는 경우도 비일비재해 졌다는 것이다. 대마초 흡연자가 운전을 할 경우 사고 위험이 최고 7배나 높아진다는 학계의 연구결과도 나왔다. 그런데도 주정부는 세수 증대와 고용창출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해 대마 합법화를 밀어 부쳤고, 미주리 유타 미시간 노스타코타 주 등도 합법화 여부를 주민투표에 부칠 예정이라고 한다.

많은 주민들이 극도로 불편해 질 수 있는 정책도 세금 거둬들이기에 용이하니 밀어붙이는 셈이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작금의 우리 상황이 자꾸 오버랩 되는 것은 왜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고 난 뒤부터 현재까지 각종 연설문과 청와대 공식 브리핑을 한 야당 부설 연구소가 전수 조사를 해 본 결과 ‘평화’나 ‘북한’ 같은 남북 관련 키워드가 ‘경제’나 ‘일자리’ 같은 경제 관련 키워드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는 소식이다. 대통령과 청와대의 관심사 순위가 적나라하게 나왔다. 지난 16개월 간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현안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평화’가 1천580건이었다. 이어서 ‘북한’이 1천453건으로 2위였다.

그러면 이 기간 ‘경제’나, ‘일자리’ 같은 경제 키워드는 몇 건 사용됐을까. 528건 이었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했던 대통령과 청와대의 관심사는 대북 문제에 더 기울어져 있었고, 경제는 더 크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다고 우리 경제가 시급하지 않은 상태일까? 한국은행이 최근 올해 전망치를 2.9%에서 2.7%로 낮췄고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각각 2.8%, 2.7%로 하향조정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6일 올해와 내년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2.7%와 2.6%로 하향 조정했다. 경기 둔화를 예고하는 신호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OECD의 8월 한국 경기선행지수(CLI)는 99.2로 17개월째 전월 대비 하락세다. 외환위기 여파가 있던 1999년 9월 이후 20개월 연속 하락 이래 가장 긴 내림세다.

이 때문에 정부 경제팀을 물갈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만 가고 있다. 명분이 실리보다 앞 선 경제정책 운용 결과들 때문이다. 위기의식이 결여된 경제팀이 오히려 경제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최근 경제 문제에 대해선 심각한 언급이 적다. 심지어 지난 주 대통령이 출입기자들과 산행 중에 “민생의 어려움을 덜면서, 그러나 우리의 정책 기조인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는 힘차게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만 말했다. 민생의 어려움은 알지만 소득주도성장 같은 작금의 정책 기조를 계속해 견지해 나가겠다는 뜻이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해 왔지만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다. 급기야 일자리가 남아도는 일본의 기업들이 일자리를 수출하러 한국에 왔다. 부산 벡스코 전시장에 엊그제 마련된 일본 기업이 차린 채용부스에 청년 1천여 명이 새벽밥을 챙겨먹고 전국에서 몰려든 것이다. 일자리 만들기에 매진하겠다는 정부가 남북관계에만 집중하고, 경제를 살려달라는 아우성은 작게 듣고 있으니 청년들은 일본으로 일자리를 찾아 줄줄이 떠나는 형국이 된 것이다.

이것 역시 밀어붙이기 식이다.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이 붕괴 조짐을 보이고 투자 감소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수출과 자산시장 모두 불안해지면서 경제 위기 조짐이 눈 앞에서 어른거리는데도 정부의 위기의식은 거의 실종이다. 부동산 정책 역시 정치 논리로만 접근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데도 정부는 프레임에 갇혀 프레임 밖의 세상을 보지 못하는 형국이다. 오히려 이게 맞고, 옳다는 사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부만 그러한가. 대구공항 이전사업을 추진 중인 대구시의 통합이전 방식 고수 시책만 봐도 역시 밀어붙이기 식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역외로 민간공항이 나가는 것을 불편해 하고, 군공항 이전에 막대한 지방예산을 투입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민들이 많은데도 시민들의 여론보다는 오로지 ‘통합 이전’에만 전력투구하는 모습이다.

다수가 불편해 하는 밀어붙이기에는 대개 고개 너머에 쓰라린 정책실패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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