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과 표절
성형과 표절
  • 승인 2018.11.07 21: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진복 영진전문대
학교명예교수 수필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 한다. 예쁘고 잘 생겼다. K팝 소녀, 소년그룹의 비주얼을 눈여겨보면 누군가를 닮은 듯 같기도 하고 처음 봐도 낯설지가 않다. 여성 못지않은 미모의 남자 아이들도 보인다. 대학수능시험이 끝나면 성형외과가 붐빈다. 초등학교 때 입을 다물어도 앞니 몇 개가 드러나 보이는 친구에게 째보라고 철없이 놀려댔던 기억이 있다. 입술이 갈라진 어른들을 시장이나 공사장 같은데서 쉽사리 볼 수 있었다. 성형의 덕으로 지금은 언청이가 사라졌다. 가끔 동남아 쪽 어렵게 사는 아이들에게 무료수술을 해 주는 것을 보면 언청이는 후진성 병인 것 같다. 중학교 때 치아교정을 받은 손녀가 고교 졸업반인 지금까지도 철사 같은 것으로 이리저리 이빨을 묶어 놓고 있다. 찜찜하고 답답할 텐데도 잘 견딘다.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는 것은 인간의 상정, 여성들에게는 로망이다. 사고나 유전으로 손상된 신체부분을 회복해 주기 위해 고안된 성형이 이제는 외모관리수단으로 보편화 되고 있다. 얼굴은 말할 것도 없고 신체 어느 부분이고 원하는 대로 뜯어 고쳐주는 세상이다. 의사 중에서도 성형의가 인기직종이라는 것은 남녀 성형인구가 날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외국인들도 우리처럼 성형을 많이 할까. 서양인들의 모습이 각양각색인 것을 보면 그들은 외양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문득 성형이 남의 얼굴을 표절하는 행위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났다. 타인의 얼굴을 본인 동의 없이 함부로 찍어 공개하거나 상업적으로 이용하면 초상권 침해가 되어 처벌을 받는다. 하지만 남의 얼굴을 본 따 자신의 얼굴을 고친다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 재미있고 아이러니하다. 표절은 남의 창작물을 자기가 한 것처럼 전부 또는 일부를 도용하는 것으로 인격적·도덕적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 주로 학문·예술분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현상으로 표절에 대한 확고한 잣대가 분명치 않아 시비가 끊어지지 않는다. 인간사 모든 존재물은 창조가 아니면 모방으로 형체 화 된다. 그런 의미에서 성형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성형은 모방과 가깝다고 볼 수 있으나 모방은 기계적이고 물리적인 반면 성형은 인간의 감성이 배어있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보이지 않는 것보다 보이는 것에 마음을 더 둔다. 성형은 보이는 것에 대한 변화욕구라고 볼 수 있지만 성형을 희망하는 사람의 보이지 않는 심리적변화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얼굴 성형이 마음에 들지 않아 여러 차례 다시 하는 이들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표절은 남의 창작물을 도용하는 인간의 내적활동이므로 성형을 표절로 비견한다면 상통성이 있어 보인다. 가시적인 형상물을 모방하거나 표절하는 경우는 저작권·상표권 침해 등 범법행위가 될 수 있지만 인간 심리적 내적표절은 규제가 어렵다. 표절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다. 자기관리시대에 얼굴을 표절하는 성형인구는 날로 늘어갈 것이다. 나는 학문적·인격적으로 표절하고 싶은 인물이 있다.

연세대 행정대학원장을 지낸 유종해 박사다. 그는 최근 미수기념문집 ‘행정학자의 길’을 펴냈다. 책을 읽으면서 교수직은 정년이 없다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학문을 죽을 때까지 한다는 믿음을 가진 그에 대한 사숙의 마음이 날로 더해 간다. ‘죽을 때까지 활동하고 죽을 때까지 공부한다(活到老 學到老)’는 그의 좌우명을 늘 마음에 담는다. 외양과 내양을 한데 묶어 살아갈 수는 없을까. 닮고 싶은 사람의 사상과 가치를 좇는 것은 내적 표절로 자기성장이다. 사람의 신체는 형상물이 아니므로 남의 얼굴을 본뜨는 행위 그 자체는 모방이지만 얼굴을 모방한다고는 말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좋은 말로 얼굴 성형이라고 하는 것이다. 남의 창작물을 표절한 것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성형 얼굴 역시 상태 유지가 쉽지 않다. 몇 번이나 얼굴에 손을 댄 연예인의 얼굴에서 본심을 비켜가려는 인간의 허심이 보여 안쓰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

어쨌든 인간은 창조를 하거나 모방을 하면서 살아간다. 가치를 어디에 두는가는 개인의 몫이다. 컴퓨터 옆에서 다림질 하는 아내의 옆얼굴을 본다. 화장하지 않는 얼굴을 유심히 볼 때가 없었다. 얼굴 여기저기 검버섯이 보인다. 성형외과에 한번 데리고 가야겠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