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과 내일에 유념하라(着念三日)
어제와 오늘과 내일에 유념하라(着念三日)
  • 승인 2018.11.0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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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전 중리초등 교장)



‘대경예임회’에서 산행에 앞장서는 일을 맡았다. 대구와 경북에서 과거 교육에 힘 쏟았던 분들이 모인 단체가 ‘대경예임회’이다. 20여년이 넘는 단체이다 보니 창립하신 분들은 연세가 많은 분들이다. 나는 여러 번 모임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지만 하는 일이 어렵다.

엊그제 수요일에는 충무시에 속한 사량도를 다녀왔다. 사량도는 아름다운 섬이다. 우뚝 솟은 ‘옥녀봉’은 슬픈 전설을 간직한 봉우리이다. 너무도 아름답고 예쁜 옥녀는 의붓아버지가 겁탈하려는 것을 피하여 봉우리(281m)에 올라가 자살을 하였단다. 그 곳이 옥녀봉인데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봉우리에서는 핏자국이 선명하고 피가 흘러내린다고 한다.

섬 산행을 간다는 것은 신경쓸 일이 너무나 많았다. 육지에서 배를 타는 시간을 맞춰야 하고, 섬에서 식사할 장소를 물색하여야 하고, 섬에서의 산행에 대한 계획을 짜야만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특히 섬에서 육지로 나오는 배시간에 맞춰야 하는 것은 신경써야 했다. ‘아차’하는 순간에는 정말 힘든 경우가 생기게 된다. 해는 짧고 날씨는 가을이어서 스산하고 웬만큼 잘하지 않고는 생색이 나지 않는 산행 계획이었다.

초창기 창립 회원 한 분은 여든의 중반인데도 안동에서 대구까지 와서 ‘대경예임회’에 참석한다. 그 분은 며칠 후 안동에 있는 친구들과 사량도를 다시 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몇 쌍의 부부동반으로 힘든 여행일 텐데 계획을 짜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그 모임에서 설악산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박대장, 그런데 그 먼 곳의 여행지를 다녀오고도 우리 일행 중 아무도 힘들다거나 아픈 사람이 없어요”하였다. ‘그건 그분들의 기쁨일 테지 뭐’하고 독백처럼 말하였다. 옛날엔 열심히 고생하며 일했는데 이제는 모두가 즐거움을 찾자는 마음이어서 몸은 괜찮단다. 마음이 육체를 지배하는 까닭이리라.

청장관 이덕무는 ‘작고양금(酌古量今)’이라 했다. ‘스스로 옛것을 참작하여 지금의 것을 헤아린다’는 뜻이다. 그 선배의 ‘옛날’과 ‘지금’이라는 말에는 아마 이러한 생각과 마음이 들어 있음이 분명할듯하다. 내가 사량도를 가는 산행계획을 세우는 것도 과거에 이곳을 한두 차례 다녀온 경험이 자신감과 용기를 갖게 했다. ‘지금’이 ‘옛날’을 참작한 것이다.

‘옛날과 지금은 크게 눈을 깜박이거나 크게 숨을 내쉴 정도로 아주 짧은 찰나이다. 반대로 크게 눈 한 번 깜박이거나 숨 한 번 내쉴 만큼 아주 짧은 찰나도 옛날과 지금이다. 그렇다 눈을 깜박이고 숨을 내쉬는 짧은 순간이 쌓이면 옛날과 지금이 되는 것이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수레바퀴처럼 쉼 없이 번갈아 돌아가면서 늘 새롭고 또 새로울 뿐이다. 이러한 가운데서 태어나고 이러한 가운데서 늙어간다’고 이덕무는 말했다.

이덕무는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은 ‘착념삼일(着念三日)’한다”고 강조를 하였다. 착념삼일(着念三日)은 ‘어제와 오늘과 내일에 유념한다’는 뜻이다. 마음에 오래도록 기억하여 두고두고 생각하는 일이 유념이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을지는 몰라도 착념삼일(着念三日)도 관습화되면 좋을듯하다.

옛날에 현명한 사람을 선비라 했다. 선비는 성리학적 관점에서 학식과 인품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흔히들 말하는 ‘대쪽 같은 선비’에서 그 의미를 되새겨 볼만하다. 대쪽은 지조를 말한다. ‘대경예임회’의 모임 성격이 그렇다.

단체에서 하는 문화탐방이나 산행을 하다보면 그 속에서 저절로 인격이 수양된다. 과거에 교직에서 쌓은 학식은 물론이고 인품이 고고한 분들이 많다. 산행에서 나무를 만나면 전문가가 나무 이름을 말하고, 꽃을 만나면 꽃말을 이야기하고, 어려운 한자를 보면 사서삼경을 읊어주고, 문화재를 탐방하면 문화해설을 한다. 저절로 향기가 풍기는 사람들의 모임임에 틀림이 없다.

이덕무가 말하는 ‘작고양금(酌古量今)’의 철학도 선비에 관한 것이다. ‘세속에 초탈한 선비는 옛것만을 따른다. 세속에 물든 선비는 지금 것을 따른다. 옛것과 지금 것은 서로 맞지 않아서 배격하는데 중도에는 절대 들어맞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스스로 옛것을 참작하고 지금 것을 헤아린다’는 내용이다.

사량도 전설의 옥녀봉에서 회원들은 높은 하늘을 보고, 넓은 바다를 보고, 산봉우리의 바위들을 보면서, 어제와 오늘과 내일에 의미를 유념하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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