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싱글맘의 새로운 출발
베트남 싱글맘의 새로운 출발
  • 승인 2018.11.08 21: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현숙(대구경북다문화사회 연구소장)



베트남의 맞선 장소에 이색적인 풍경이 눈길을 끈다. 보기에도 앳되어 보이는 20대 초·중반의 결혼에 실패한 여성들이 최근 2~3년 사이에 맞선을 보러 오는 모습이 부쩍 늘어났다. 베트남 여성들은 조혼 풍습이 있어서 철 모르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한다.

상견례 때 낯선 나라에서 온 새아빠가 될 사람을 기대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망울 때문에 가슴속에 구멍이 난 것처럼 휑했다. 눈시울을 붉히는 나에 비해 오히려 신부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담담해 보였다. 친정에 아이들을 맡기고 새 인생을 개척하는 재혼문화의 한 형태로 보였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성들과의 결혼이 국제결혼 초창기의 모습이다. 베트남도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진출해서 젊은이들의 일자리 창출이 되고, 소득도 높아졌다. 여성들의 의식도 깨이기 시작하여, 한국 여성처럼 상대 남성의 조건을 꼼꼼하게 본다. 외모, 나이 차이, 소득 등을 확인하고,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지도 물어본다.

베트남 여성과의 결혼을 물질적인 가치 기준에 두는 한국 남성들의 생각이 현실적으로 맞지 않아 노총각들이 나이 어린 초혼 여성들에게 퇴짜를 맞기도 한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서 베트남에서 새로운 형태의 재혼문화가 등장했다. 그녀들의 이혼 서류를 확인해보면, 아이들을 대부분 엄마가 양육하거나, 경우에 따라서 자녀들을 각자 키우기도 한다. 양육비를 부담하도록 판결을 받았지만, 경제적 능력이 없어서 그림의 떡이다. 이들의 이혼사유를 보면 90퍼센트 이상이 남편에게 문제가 있다. 술, 도박, 외도, 폭력, 무능력이 대부분이다. 이혼 후 그녀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간다. 친정 부모님께 아이들을 맡기고, 미싱공장이나 구두공장 등 일터로 나간다. 싱글맘의 고단한 삶이 시작된다.

지방에 사는 사십 대 중반의 k씨는 베트남에서 삼십 대 초반의 돌싱녀를 만났다. 그녀는 아줌마 같지 않은 늘씬한 몸매에 윤이 나는 검은 생머리의 미인이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우수에 찬 듯한 큰 눈이 매력적이었다. K씨는 첫눈에 반했다. 그녀는 막내가 겨우 두 돌배기이고 위로 두 딸이 있는 딸 세명의 엄마였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미래가 안 보이는 삶이었다. 친정 부모님들은 딸 인생의 희생양이 되어 손녀들을 기꺼이 맡는다. 손녀들을 돌보느라 허리가 휘어지더라도 내 딸이 좋은 배필을 만나 잘 살 수 있다면 아무리 힘든 일도 견딜 수 있는 그들이다. 어린 딸들을 친정부모에게 맡기고, 한국 남성과 재혼하려는 그녀를 처음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아직 젊다. 그녀 역시 우선 마음이 아프고 힘들더라도 어린 자녀들의 미래와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생이별을 감수한다. k 씨는 지방에서 큰 토마토 농장을 갖고 있으며 임대수입으로 실속 있는 알부자다. 그녀의 사정을 충분히 듣고 나서 그는 매월 그녀의 자녀들이 성장할 때까지 생활하고 교육할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하기로 약속했다. 그녀의 수심 깊은 얼굴에 환한 안도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k씨와 베트남 신부는 과거의 상처가 깊은 사람들이다. 한 번의 실패를 디딤돌로 삼아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며 어려움을 잘 극복하리라 생각한다. 베트남에 남겨진 아이들이나 한국에 있는 아이들도 엄마의 빈자리가 크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양쪽 나라의 아이들을 내 자식처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랑의 마법이 필요하다. 신부는 남편과 지내는 동안 많이 행복해했다. 더도 바라지 않고 한국 가서도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대해주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굳은 믿음이 생겼다 한다.

그간의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두 재혼 부부를 위해 마음속으로 기도 한다. 용기를 내어 어려운 발걸음을 뗀 이 부부와 자녀들에게 신이여 은총을 내리소서.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