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노란 본색 드러낸 청도 적천사 은행나무
늦가을 노란 본색 드러낸 청도 적천사 은행나무
  • 김광재
  • 승인 2018.11.1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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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데리고 온 젊은 부모, 사생 나온 일요화가들 가을 만끽
철제 괘불대 제거된 대웅전 앞 돌 지주 두쌍 쓸쓸히 서 있어
천연기념물 402호 적천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402호 적천사 은행나무.

11월에는 햇빛마저 단풍이 드는지 오후 2시의 햇살이 벌써 노을빛이다. 25번 국도를 따라 밀양으로 가다 우회전해 적천사로 들어간다. 경부선 철로 굴다리를 지나 청도읍 원리 마을을 거쳐 좁은 시멘트 포장길을 오르다 보면 제법 볼만한 솔숲이 나타난다. 일주문을 대신해 여기서부터 사찰 영역이라고 알려주는 듯하다.

적천사 천왕문 아래에는 큰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절을 마주 보고 서서 오른편에 있는 나무가 천연기념물 제402호다. 안내판에는 높이가 25~28m 가슴높이 둘레가 11m이며, 80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적혀있다. 나이 추정은 고려 명종 5년(1175년)에 보조국사 지눌이 이 사찰을 중건하고 심었다는 전설에 따른 것이라 한다.

 

바닥에도 가지에도 노란 은행잎 사태가 났을 거라 기대하고 왔는데 별로 풍성하지가 않다. 내가 너무 늦게 온 탓이라 생각했는데, 절을 관리하는 처사에게 물어보니 올해는 해거리를 하는지 잎도 열매도 적다고 한다. “낙엽을 한 번도 안 쓸었는데 저 정도밖에 안 쌓였어요. 은행알도 보통 여덟 말 정도 나오는데 올해는 두 말밖에 안 되고……”

적천사 천왕문과 은행나무.
적천사 천왕문과 은행나무.

하지만 8백살 넘은 은행나무가 잎 틔우고 씨앗 맺는 일에 한 해 소홀했다고 무슨 대수이겠는가. 떡잎 같은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는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분주하다. 어느 일요화가 모임에서 사생을 나왔는지 자리를 잡고 앉아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 여럿이다.

생각해보면 은행나무는 푸르던 잎이 색이 바래 노랗게 변한 게 아니라, 이제야 제 색깔을 내는 것이다. 나뭇잎에서 엽록소 공장이 가동되는 동안에는 은행나무도 단풍나무도 참나무도 모두 녹색이지만, 공장 가동이 중지되는 가을이면 각기 노랑, 빨강, 갈색으로 본색을 드러내니까. 사람도 나무처럼 노동의 시절이 저물어갈 무렵에야 한 사람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머리 희끗한 일요화가들은 그동안 애써 외면하고 꾹꾹 눌러놓을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본모습을 지금 캔버스 위에서 다시 만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적천사 풍경을 화폭에 담고 있는 일요화가들.
적천사 풍경을 화폭에 담고 있는 일요화가들.

잎은 한 해의 삶을 마감하고 흙으로 돌아가지만, 800살 은행나무는 굳게 버티고 서서 다음 해를 맞이한다. 어쩌면 오늘 이 나무를 보러온 모든 사람들이, 저 떡잎 같은 아이까지 모두 세상을 떠난 미래에도 적천사 은행나무는 새 사람들을 맞이할 것이다.

거꾸로 세월을 짚어보면 저 나무는 어릴 적에 몽골 기병의 말발굽 소리를 들었을 것이고, 왜군이 불을 질러 잿더미로 변해가는 절을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 은행나무의 조상들은 공룡이 멸종하고 매머드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2억년 혈통을 이어온 은행나무는 이제 동아시아 지역에만, 그것도 사람의 손을 빌어 가로수, 조경수로 번성하고 있다. 저 나무도 언젠가는 수명을 다해 쓰러질 것이고, 세월이 더 흘러가면 지상의 마지막 은행나무가 몸을 뉘는 날도 올 것이다. ‘백년도 못사는 인간이 ‘살아있는 화석’을 보고 별 주제넘은 생각을…….’

적천사 대웅전과 괘불대 지주.
적천사 대웅전과 괘불대 지주.

절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천왕문을 지나고 무차루(無遮樓) 아래를 지나 대웅전(경북도 유형문화재 제473호) 앞마당에 올라섰다. 대웅전은 몸을 반쯤 바꾼 모습이다. 기둥, 평방, 도리, 서까래 등 부재들을 새 목재로 교체했는데, 살아남은 부재는 단청이 돼있고 교체한 부분은 백골 상태다. 문화재 보수 공사는 지난해에 완공했으나 예산이 부족해 단청을 올리지는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한 건물에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묘한 불협화음이 처음엔 어색했는데 이내 편안해졌다. 오히려 옛것과 새것이 어깨동무하고 있는 부분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대웅전 앞에는 매끈하게 다듬지 않은 투박한 돌기둥 두 쌍이 서 있다. 가로 5미터 세로 12미터가 넘는 탱화를 걸기 위한 괘불대 지주다. ‘적천사 괘불탱 및 지주’가 보물 제1432호로 지정돼 있다. 부처님오신날이 되면, 괘불을 꺼내 대웅전 앞에 걸고 봉축행사를 연다. 원래 돌기둥 사이에 철제 장대가 있어 거기에 괘불을 걸었으나, 쇠장대는 보물이 아니라 하여 제거했다고 한다.

돌 지주에는 강희40년(1701년)에 만들었다고 새겨져 있다. 300년이 넘는 세월을 비바람 맞으며 버텨온 지주가 이제 강제퇴역을 당한 것이다. 장정 10명이 붙어서 옮겨야 하는 무거운 괘불을 지탱하는 것이 더는 무리라고 판단됐을 수도 있겠고, 대웅전 보수공사에 방해가 돼서였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비계를 설치해 괘불을 걸어놓은 올해 부처님오신날 사진을 보니 괜히 민망한 느낌이 든다. 괘불대에 걸린 옛날 사진과 비교하면 옛 방식이 훨씬 보기에 좋다.

적천사의 가을.
적천사의 가을.

이제는 쓸모없어진 구멍이 두 개씩 뚫린 채, 멀거니 서 있는 두 쌍의 돌 지주가 쓸쓸해 보인다. 내년 봄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괘불탱이 높이 걸릴 때, 천왕문 앞 은행나무는 다시 많은 잎을 틔우겠지만 대웅전 앞 돌 지주는 걸리적거리기만 하는 존재로 남아있을 테지.

김광재기자 contek@idaegu.co.kr
 

2018년 부처님오신날 적천사 괘불탱이 비계에 걸려있다.(사진출처 babyksd님의 블로그. http://babyksd.blog.me/221281932823)
2018년 적천사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
(사진출처 : babyksd님의 블로그. http://babyksd.blog.me/221281932823)
괘불대가 설치된 모습.(사진출처 두산백과)
괘불대가 설치된 모습.(사진출처 두산백과)
적천사 괘불탱이 걸린 사진 액자.
적천사 괘불탱이 걸린 사진 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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