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파도소리가 암호였다
짧은 순간 기억의 파편들이
광속의 퍼즐로 자리를 찾아간다
전생인지 현생인지 알 수 없는 메일함의 과거
순진과 아둔이 뒤엉킨 혼돈의 시간
신은 폐기일보직전의 그녀를 재활용했다
프로그래밍된 기능은 시선고정
버튼은 하나
522마네킹 계속 전진
되돌리기 기능은 없다
살아있는 오늘 찰라만 기억하라
심장 없이 꾹 깨물어라
겨울비 칠흑 진창을 저벅이며
패잔병들이 우르르 몰려오던 밤
그날도 포도에서 교통봉을 연신 휘두르는
메마른 영혼이 있었다.
◇강은주= 1963년 경북안동 출생. 책사랑 전국주부 수필공모전 대상. 현 대구한국일보 기획홍보부장
<해설>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세상을 바라보던 두개의 창 추상성과 모호성은, 존재란 정의될 수 없다는 믿음과 또한 그럴 수 없음에서 오는 좌절의 회피일 것이다. 헙수룩한 슬픔을 빠뜨린 채 가눌 길 없는 마음은, 어쩌면 그것이 자신을 은폐하기 위한 장치일지 모른다. 시간은, 우리 모두가 다른 삶이 없는 삶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살다가 기억과 망각의 경계선이 자리한 계절이 되면, 바닥을 드러낼 만큼 비우고 또 비워야 비로소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성군경(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