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결합·전통 계승·파격 필치 ‘3色 서예전’
동서양 결합·전통 계승·파격 필치 ‘3色 서예전’
  • 황인옥
  • 승인 2018.11.13 2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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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문화회관 갤러리 ‘우리가 넘가’展
박재술
동양화 서양화 구분없이 섭렵
캔버스에 유화로 산수화 담고
낙관은 찍지 않고 일일이 그려
최완식
옷 위에 손가락으로 글씨 연습
40년간 한글과 한문서예 통섭
소나무 기운 살린 문인화 일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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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최완식·박재술·김동욱.


그야말로 3인 3색이었다. 서예와 문인화를 기반으로 세 작가의 전시를 ‘우리가 넘가’라는 제목으로 엮었는데, 작가마다 화풍이 완전 달라 극과 극을 달렸다. 벽천 박재술은 동서양을 아울렀고, 덕헌 최완식은 서예의 전통을 묵직하게 계승했으며, 쌍산 김동욱은 자유분방한 파격으로 서예의 현대화를 모색했다. 백운산 학당에서 4년 동안 함께 한 인연으로 모인 3인전은 서구문화회관 갤러리에서 17일까지 열린다.

박재술-목단
박재술 ‘목단’


◇ 동양인 듯, 서양인 듯 벽천 박재술

꿋꿋한 기개가 결연한 소나무 한 그루가 골 깊은 산풍경을 압도하고 있고, 오른쪽 귀퉁이에 ‘우주홍황(宇宙洪荒)’이라는 화제(畵題)와 낙관(落款)이 쓰여있다. 벽천 박재술의 작품이다. 그런데 언뜻 보면 동양화다. 같은 풍경이라도 서양화는 사실성, 동양화는 정신성을 기반으로 한다. 벽천의 작품은 후자에 가깝다. 관념성 짙은 풍경의 구성이 전통산수화에 가까웠고, 화제와 낙관도 동양화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서양화다.

벽천이 “내 작품은 동양화 같기도 하고 서양화 같기도 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벽천은 지천명을 앞둔 48세에 서예에 입문했다. 늦어도 한참 늦은 출발이었다. 60 이후의 삶을 생각하면서 서실의 문을 두드렸다. “노년을 음주가무로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서예를 시작했다. 어느새 30년이 됐다.”

늦은 시작이었지만 그림에 대한 열정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야말로 열심이었다. 서예와 문인화를 배우면서 서양화와 서각까지 동시에 섭렵했고, 한창 배울 시기에는 하루에 학원을 4군데나 다닐 정도였다. 제도권 교육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대구예술대학교 미술대학 서예학과를 시작으로 서울동방대학원 대학교 서화예술학과 석사,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서예최고위과정, 홍익대학원 동양화 미술실기과정 등을 두루 거쳤다.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 다닐 때는 KTX가 없던 시절이라 오후6시에 출발하면 새벽 2시나 3시에 대구에 떨어지는 강행군을 했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 없이 공부에 전념했다.”

서양화에도 동양화의 화제와 낙관을 넣는다. 낙관은 찍는 대신 쓴다. 현대문인화의 흐름이 시문인 화제를 생략하는데 벽천은 서양화에 이 둘을 모두 활용한다. 이러한 동서양의 회통(會通)은 서예와 문인화, 산수화, 서각, 서양화를 두루 섭렵한 그의 독특한 이력이 개입한다. 특히 서예의 기본을 탄탄하게 닦은 것이 서양화같은 동양화, 동양화 같은 서양화를 그리는 배경이 되고 있다. 그 역시 가장 매력적인 장르로 “서예”를 꼽았다. “서예가 가장 힘들지만 깊이 있는 공부를 반드시 해야 한다. 서예를 해야 문인화나 서각 등의 예술적 확장이 가능하다.”

최완식-해공선생시
최완식 ‘해공선생시(무궁화)’


◇ 전통서예의 맥을 잇는 덕헌 최완식

덕헌 최완식의 서예 부력은 40년이다. 어린 시절 서당에 다니면서 붓글씨로 시작해 서예로 발전했다. 이후 대구예술대학교 미술학부에서 서예를 전공하고 대한민국서예대전 초대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문인화는 청오 채희규 선생에게 사사했다. 특히 문인화는 소나무를 선호한다. 소나무의 기운생동 하는 선을 잘 살려낸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는 한글과 한문 서예를 두루 아우른다. 그가 “한국 서예가들은 복받은 사람”이라고 했다. 한자와 한글을 모두 사용했던 역사적 배경으로 한문서예와 한글서예에 두루 능할 수 있다는 것. 이는 한국서예인들의 자부심이라고 했다. 뜻글자인 한문과 소리글자인 한글의 아름다움이 각기 달라 둘을 통섭한 한국 서예야말로 중국, 일본과 달리 예술적인 지평을 보다 넓게 확장할 수 있다는 것.

“일본과 중국은 한문서예만 한다. 그런 반면에 우리는 한글서예를 하며 서예의 예술성을 확장해 왔다.”

덕헌이 임서(臨書)를 언급했다. 서예에서 임서는 자습서를 곁에 놓고 보면서 쓰는 글씨를 말한다. 서예가들은 임서의 단계를 점과 획과 결구 장법을 터득해 비속하고 방종한 운필이 되지 않도록 마음과 정신을 법으로 조명하고 수렴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이렇게 익혀 가며 집필법, 운필법, 묵법, 구생법, 장법 등을 자연스레 몸에 베이도록 했다. 임서에는 형임(形臨), 의임(意臨), 배임( 背臨)이 있다.

서예가 최완식은 임서에 ‘공임(空臨)’을 추가했다. 공임은 손바닥이나 웃 위에 손가락으로 쓰는 글씨를 말한다. 일종의 연습 과정이다. “요즘 유행인 찢어진 청바지는 과거 우리 선조들이 먼저했다. 옷이 헤질 정도로 옷 위에 공임을 했다.” 덕헌 역시도 부단한 공임의 실천으로 전통 서예의 맥을 잇는 서예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덕헌이 “서예는 혼을 불어넣는 예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서예를 ‘서여기인’이라고 했다. 그가 서여기인은 서여기인(書如其人·글씨는 그 사람과 같다)과 서여기인(書與其人·글씨는 그 사람과 더불어 있다)을 모두 포섭한다고 했다. “서예는 나를 바로 잡아줄 뿐만 아니라 나를 윤택하게 해 준다. 그러니 혼을 불어넣을 수밖에…”

김동욱-작
김동욱 ‘잘살아보세’


김동욱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로운 글씨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잎체 개발
서예 퍼포먼스 부문 신지식인 인증

◇ 자유분방한 쌍산 김동욱

일찍이 서예로 이처럼 기발한 작품을 본 적은 있었던가? 고목에 불은 점들이 물결치는 작품 ‘바람이 분다’에서 삼천리 방방곡곡에 홍매 향기가 흩어지는 모양을 표현한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작품 ‘독도는 내손으로 지킨다’에서는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영어 ‘Dokd’와 손바닥 그리고 내천자(川) 형상과 한글 지킨다가 위에서부터 아래로 차례로 그려져 있다. 작가 김동욱이 “독도(Dokd)는 내(川) 손(손모양)으로 지킨다’라는 뜻”이라고 했다.

“나는 틀에 박힌 것을 싫어한다. 어찌보면 졸작같고 어찌보면 명작같다는 시선도 개념치 않는다. 작품성의 차원을 떠나 나의 정신세계, 나의 본성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으로 나는 행복하다.”

쌍산은 30대 초반에 서예에 입문했다. 대구예술대학교에서 서예를 전공하며 서예와 인연을 맺었다. 늦은 출발이지만 당시 그는 정신적인 탈출구가 필요했고, 서예는 그에게 기꺼이 탈출구가 돼 주었다. 그는 레슬링 선수에서 서예가로 전환한 드문 케이스다.

“학창시절 레슬링 선수로 뛰었다. 마산시청팀에서 프로선수로도 활약했다. 레슬링을 할수록 성격도 급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반대급부로 고상한 서예를 시작했다.”

쌍산의 서예하면 풍죽체(風竹體)다. 풍죽체는 바람에 대나무잎이 흔들리는 서체로 쌍산의 독자체다. 대나무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얽히고 설켜서 하나로 녹아드는 모습이 서예와 흡사해 자신의 서체로 완성했다. 13년 전부터는 서예에 퍼포먼스를 접목했다. 레슬링의 호흡, 리듬, 기술 등의 삼위일체를 적용해 그만의 독자적인 서예 퍼포먼스를 완성했다. 지난 7월에 한국 신지식인협회에서 주관한 문화예술서예 퍼포먼스 부분에서 신지식인 인증을 받기도 했다.

작품은 짧게는 10초, 길게는 30초면 완성된다. 일필휘지의 대범한 경지다. 그가 “문인화나 퍼포먼스도 모두 서예의 탄탄한 기본기가 있어야 가능하다”며 서예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서예의 기본이 갖춰지지 않으면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지 힘들다. 설상 구축했다 하더라도 내공을 품기도 어렵다. 나는 서예의 바탕 위에서 내 역량으로 독자성으로 확대해 간다.” 053-663-3081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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