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카루소(E.Caruso)와 파바로티(L.Pavarotti)의 대화Ⅰ
[문화칼럼] 카루소(E.Caruso)와 파바로티(L.Pavarotti)의 대화Ⅰ
  • 승인 2018.11.1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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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수성아트피아관장


P. 챠오! 그란데 테노레(Grande Tenore;위대한 테너) ‘카루소!’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제가 이승을 떠나 여기로 온지도 10여년이 지났습니다. 처음엔 이곳 생활이 낯설어 무척 애를 먹었는데 위대한 카루소께서 돌봐 주신 덕분에 이젠 잘 지내고 있답니다.

C. 그래 다행일세. 자넨 워낙 일찍부터 대스타로서 특별한 삶을 살다가, 누구나 하나의 존재 그 자체로만 인정받는 이곳에서 적응이 쉽진 않았을 걸세.

P. 그러게 말입니다. 하심(下心)이란 것이 말이야 쉽지, 그게 참 그렇더군요. 모든 인격이 그 자체로만 존재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억울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만 이젠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기쁨과 평화로 가득합니다.

C. 그래! 그래서 그런지 요즘 자네 얼굴에선 빛이 나네. 예전엔 볼 수 없었던 현상이지. 근데 오늘 무슨 일로 날 보자고 했는가?

P. 긴요한 용무가 있어서는 아니고 그냥 마에스트로의 얼굴이 보고 싶었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완전한 밝음과 평화 속에 있으며 저 밑의 세상일은 잊고 지내지만 가끔씩 선배님들이 만들어 놓은 오페라의 황금시대의 앞날이 걱정되기도 해서 오늘 이런저런 얘기나 나누고 싶어 뵙자고 했습니다.

C. 그렇지 않아도 내 한 5년쯤 전에 사바세계에 잠시 내려가서 시스템 개선보다는 사람, 즉 예술가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일러 준적 있지. 그래서 요즘은 어떤가 하고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네.

P. 그러셨군요. 카루소님은 그야 말로 ‘위대한 성악가’였습니다. 아직도 대부분의 성악가들이 소리의 스승은 ‘카루소’라고 말할 정도로 우리에게는 절대적인, 완전함 그 자체였습니다. 저희 같은 후배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관객들을 행복하게 해주셨습니다.

C. 허허, 우리 땐 나뿐만 아니라 위대한 인물이 참 많았지…, 하지만 그것은 유전적으로 걸출한 사람이 많았다기보다 시대적 상황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하네. 그 시대는 참 여러 가지로 살기 어려운 세상이었고 교육도 요즘처럼 체계적이지도 않았는데 영웅들이 많이 나타났지.

P. 그럴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C. 우리가 공부할 땐 녹음기도 없어서 자신의 감각에 의지해야 했지. 이렇게 느낀 것은 오래가, 마치 일광욕으로 생성된 비타민 D가 더 오래 가듯이. 대륙을 오갈 때도 배로 한두 달씩 걸리곤 했어. 그래서 느린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런 시간을 통해 성대도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고 깊은 생각에 잠겨, 보다 영적인 음악을 할 수 있었다네. 이런 것들이 벨칸토의 완성을 이룰 수 있었던 힘이었다고 생각하네.

P. 아! 그렇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카루소님! 그 시대는 그래서 그랬다 치더라도 요즘엔 예전보다 먹을거리도 풍부해 다들 영양상태가 좋지 않습니까? 의학도 발전해서 예전보다 과학적이고 효과적으로 성악가의 성대 관리, 치료도 이루어지고 있죠. 또한 녹음과 영상으로 노래도 분석하고 선배님 세대의 전설적인 대가들의 음악을 일찍부터 들으며 공부들을 하는데 왜 이런 것에 비례해 과거보다 더 훌륭한 아티스트가 나오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요?

C.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보네. 먼저 지금의 시대적 분위기로 인해 클래식에 인생을 걸겠다는 사람이 줄었으며, 오락거리가 워낙 다양해 오페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덜한 것이 그 하나고. 또 하나는 요즘 세태가 워낙 바쁘게 돌아가서 성악가들의 비즈니스 역시 그런 것 같아. 아무리 세상이 복잡다단하다고 하더라도 예술가는 고요함 속에 있어야 하며 오로지 자신과의 직접적인 대화가 중요하다는 말이지. 자신을 속이지 말고, 깊이 들여다봄으로써 보다 본질적인 자신과 마주 해야 한다고 보네. 예술가에겐 이런 시간과 환경이 중요하지.

P. 중요한 말씀입니다. 넘치는 정보와 풍요로운 삶이 예술적 성취를 보장해주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잠시 옆 동네인 안드로메다은하 쪽으로 산책이나 다녀와서 말씀을 더 나눌까요?

C. 좋지, 지금쯤 그쪽 풍경이 볼만하지. 거긴 너무 밝아! 선글라스 챙겨가세. 자 길을 앞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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