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를 갈무리하는 새 - 모든 생명체는 이 가을에
열매를 갈무리하는 새 - 모든 생명체는 이 가을에
  • 승인 2018.11.1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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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
교육학박사
사람들은 지금 이 계절을 가리켜 ‘가을’이라고 합니다. 왜 처음에 ‘가을’이라고 이름 하였을까요? 시작부터 ‘여름’이라고 하였으면 ‘여름’이 되었을 텐데요.

‘가을’의 어원(語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說)이 있으나 가장 일반적이고 또한 공통적인 의견은 ‘갈무리’ 즉 ‘추수(秋收)’와 관련 깊다는 것입니다. 지역에 따라 ‘가실한다’ 또는 ‘가을 한다’고 하면 곧 추수를 의미합니다.

그러니 ‘가을’이라는 이름에는 거두어 들여서 갈무리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겠습니다. 사철이 뚜렷한 지역의 농경시대에 생겨난 이름이라 하겠습니다. 눈 내리고 바람 불어 먹을 것이 귀할 때를 대비하여 가을에 거두어들여 갈무리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가을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먹을 것을 거두어 잘 보관하는 일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만이 갈무리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토끼와 다람쥐는 물론 새들도 먹이를 곧잘 저장하곤 합니다. 겨울잠을 자는 파충류들은 자신의 몸속에 지방을 잔뜩 저장합니다. 새 중에서도 특히 어치는 모이를 잘 숨겨놓기로 이름나 있습니다.

토끼나 다람쥐 등은 자신의 굴속에 도토리를 잔뜩 쌓아놓기도 하지만 더러 계곡의 바위를 덮고 있는 이끼 속에 숨깁니다. 그러면 축축한 이끼 속에서 싹을 틔우게 됩니다. 싹이 나올 무렵이면 떫은맛이 사라지고 달콤한 맛이 감돌게 됩니다. 그 순간에 도토리를 꺼내어 먹습니다. 그러나 열 개를 숨기면 대여섯 개 밖에 찾아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는 사이 나머지 도토리들은 싹을 틔워 번식(繁殖)을 하게 됩니다.

이는 어쩌면 매우 치밀하게 계산된 도토리나무의 번식 수단이라고도 하겠습니다. 도토리나무는 그 열매 속에 탄닌(Tannin)이라는 떫은 성분을 속껍질인 보물 속에 애써 감추어 둡니다. 이것이 바로 다람쥐들이 그 열매를 주워 금방 먹지 못하도록 하는 방책입니다.

그래서 다람쥐들은 축축한 이끼 속에 감추어 놓고 싹이 틀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사람들이 콩나물을 길러 먹는 것과 같습니다. 콩을 싹틔워 나물로 만들면 비릿한 냄새 대신 달면서도 고소한 맛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치는 도토리를 오래 보관할 굴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치는 도토리를 물고 양지바른 능선을 찾아갑니다. 그곳에서도 햇볕이 잘 찾아오는 부드러운 땅속에 묻어놓고는 낙엽을 덮어 놓습니다. 그래야 겨울에 땅이 얼어도 쉽게 꺼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또한 눈이 많이 내려도 양지쪽부터 녹으니까 묻어 놓은 도토리를 쉽게 꺼낼 수 있는 것입니다.

어치는 영리해서 청설모와 같은 다른 동물들이 알아채지나 않을까 하여 하루에도 몇 번씩 열매 묻어놓은 곳을 순찰한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도토리 냄새가 퍼져 나가지 못하도록 젖은 낙엽을 물어다 덮는다고도 합니다. 그래도 들킬 만하면 아예 파내어 다른 곳으로 옮겨 묻는데, 한겨울에는 멧돼지가 냄새를 맡고 땅을 마구 뒤지기 때문에 멧돼지들이 제대로 설 수 없는 비탈진 곳에 파묻는다고 합니다. 참으로 치밀한 계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치는 토끼나 다람쥐와는 달리 열 개를 묻으면 일고여덟 개는 찾아낸다고 합니다.

이처럼 새들도 치열하게 그들의 생명을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그냥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 또한 자신의 종족 보존을 위해 열매의 일부가 먹히더라도 기꺼이 새에게 그 열매를 나누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새들과 나무는 협동 관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나무와 다람쥐, 토끼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가혹한 자연 속에서 스스로 생명을 이어나가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의 치열한 생존전략 앞에서 더욱 경건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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