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로 간 아이들, 6·25 북한 고아 품어준 푸른 눈의 천사들
폴란드로 간 아이들, 6·25 북한 고아 품어준 푸른 눈의 천사들
  • 배수경
  • 승인 2018.11.15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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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와코비체 양육원 교사들
고아 1천500명 사랑으로 치유
생존자 진솔한 메시지 ‘뭉클’
배우 추상미 장편 감독 데뷔작
탈북민 출신 배우 이송과 동행
역사적 상처 공유하며 소통
폴란드로간아이들
폴란드로 간 아이들 컷.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폴란드 바르샤바의 기차역에 한무리의 동양 아이들이 도착한다.

바로 북한 전쟁고아들이다. 이후 바르샤바 인근 프와코비체 양육원 교사들의 따뜻한 사랑 속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아이들은 1959년 북한의 천리마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무렵 본국으로 송환이 된다.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 아이들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폴란드에는 남아있다. ‘그들이 누구이며 누가 왜 이 아이들을 잊지 못하고 있는걸까?’ 의문에 대한 답은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쟁은 모두를 고통받게 하지만 특히 아이들에게는 더욱 가혹하다.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누구도 기억하지 않고 우리 역사에서 잊혀질 뻔한 아이들에 대한 기록이다.

바르샤바 인근 공동묘지에는 폴란드로 온 1천500여명의 북한 고아들 중 유일하게 돌아가지 못한 한 명의 소녀, 김귀덕의 묘가 있다. 이 소녀와 전쟁고아들의 이야기는 폴란드 공영방송을 통해 ‘Kim Ki-Dok(김귀덕)’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천사의 날개’란 책으로 세상 밖으로 알려졌다.

배우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추상미는 첫 번째 장편영화의 소재로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선택한다. 처음부터 다큐멘터리 영화였던 것은 아니다. 이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그루터기들’이란 극영화를 준비하면서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폴란드로 간 그녀는 80대 후반에서 90대 교사들의 증언과 모습을 기록하다 79분 분량의 다큐멘터리를 먼저 선보이게 된다.

폴란드 전 대통령 코모로프스키도 2013년 방한때 한 대학의 강연에서 그의 어머니가 ‘바르샤바 외곽에서 한국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쳤다’며 한국과의 인연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폴란드는 전쟁과 점령 등 우리나라와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교사들은 낯선 동양의 아이들을 부모의 마음으로 품으면서(아이들은 교사들을 ‘마마, 파파’로 불렀다고 한다) 자신이 겪은 상처를 함께 치유해나간다. 이를 추감독은 ‘상처의 연대’라 부른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아이들과 함께 했던 기억을 생생하게 이야기하던 90대의 프와코비체 양육원 원장은 “그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라는 말을 남기며 눈물을 닦아냈다.

다큐멘터리 속에는 이때 폴란드로 보내진 아이들이 북쪽의 아이들 뿐 아니라 남쪽의 아이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들어있다. 북한으로 돌아간 이들 중에서는 자유를 갈구하다 세상을 떠난 이도 있다는 부분에 이르면 한숨이 터져나오며 가슴이 먹먹해진다. 물론 다큐멘터리에는 언급되지 않지만 엘리트로 성장한 이들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남북 화해모드와 함께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후속 이야기도 기대해볼 수 있겠다.

추감독이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모성애’에서 비롯되었다. 산후 우울증으로 힘들어 하던 그녀는 북한의 꽃제비 영상을 보고 ‘저 아이의 엄마는 어디에 있을까?’하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그 즈음 듣게 된 북한 전쟁고아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이들에 대한 기록을 찾아가는 과정에는 준비하던 영화 ‘그루터기들’ 오디션에서 만난 탈북민 출신의 배우 이송도 함께 한다. 탈북과정에서 겪은 이야기를 입밖에도 꺼내고 싶어하지 않는 이송에게 이 여정은 남다른 의미이다. 남과 북에서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여자의 동행 역시 ‘상처의 연대’를 통한 치유의 시작이었기를 바래본다.

상영 내내 작은 흐느낌만이 들리던 영화관은 엔딩크레딧이 올라가자 그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던 관객들의 박수소리로 가득찼다.

제 23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 공식 초청작으로 대구 예술영화상영관 동성아트홀에서 20일까지 상영예정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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