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우 칼럼] 수능 성적과 인생
[윤덕우 칼럼] 수능 성적과 인생
  • 승인 2018.11.1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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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우 주필 겸 편집국장
윤덕우 주필 겸 편집국장

2019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지난 15일 치러졌다. 국·영·수가 지난해보다 어려웠다고 한다. 불수능이라고 난리다. 국어 영역은 최근 10년동안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어떤 학생들은 실력을 발휘했겠지만 시험을 망친 학생들도 있다.

그러나 누구든 실망하지 마시라. 지금은 수능성적이 인생을 좌우할 것처럼 보이지만 세월이 지나가면 그것이 별것 아니었다는 것을 아는 날이 온다. 나이가 들어 동창회를 나가보면 안다. 공부가 작은 성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살아보면 공부가 다가 아니다는 것을. 인생 경험이다.

시험을 잘친 사람도 인생의 가시밭 길이 있을 수 있고 못친 사람도 비단길을 걸을 수가 있다. 그게 운명이자 인생의 아이러니다. 학창시절 공부는 잘 못했지만 사업에 성공해서 동창회서 돈 잘쓰는 친구들이 많다. 반면에 모범생으로 공부는 잘했지만 월급쟁이 생활하며 동창회 회비만 달랑내는 친구들도 적지않다. 경험적으로 공부 잘하던 친구들은 자기사업보다 대기업이나 공직 등 월급쟁이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50전후에도 자의반 타의반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 일찌감치 자기사업을 영위한 친구들의 직업수명이 훨씬 길어보인다.

그러니 시험 못쳤다고 결코 좌절하지 마시라. 앞날에 어떤 운명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신에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잘 찾아서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방탄소년단도 그렇고 유명쉐프들도 그렇다. 제각기 타고난 저마다의 재능과 소질을 개발하면 된다. 하다보면 어려움에 부딪히고 질퍽거릴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미있게 열심히 하다보면 길이 열린다.

그 유명한 58개띠. 올해가 무술년이니 며칠있으면 환갑(還甲)이다. 옛날같으면 상노인이다. 요즘은 백세시대라 환갑을 지내는 이들도 없다. 환갑이라고 말하기 조차 쑥스럽다. 그래도 60갑자(甲子)가 돌아왔으니 인생을 한바퀴 살았다. 친구들 중에는 고위직에 올랐던 유명한 법조인이나 국회의원, 의사들도 적지않다. 한바퀴 살아보니 문득 드는 생각, ‘인생 별거 없다’다. 또래 친구들이나 선배들도 그렇게 얘기한다. 1958년 1인당 국민소득은 80달러. 전후 세대로 세계 최빈국에서 태어나 치열한 경쟁 속에 바쁘게 격동의 세월을 살았다. 초등시절 검정고무신과 얇은 나일론 양말로 영하 십도가 오르내리는 추운 겨울을 견뎠다. 휴지가 없어 볼일을 보고 짚으로 닦는 시절이었다. 보릿고개를 넘기며 허기와의 전쟁을 경험했지만 헬조선에서 태어났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다. 그 시절은 모두가 철저히 흙수저였다. 초근목피하던 그때 그시절. 고향 의성에서 봄이면 물오른 소나무 가지를 꺾어 낫으로 속껍질을 벗겨먹었다. 송기다. 먹거리가 없어 진달래꽃, 찔레꽃, 아카시아 꽃이 주요간식이다. 보리등겨로 만든 등게떡도 먹었다. 하도 맛이 없어서일까 개떡이라고도 불렀다. 요즘 아이들은 레고나 값비싼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만 그 시절 놀잇감은 주로 흙이나 돌과 나무였다. 찰흙 종류인 쪼대나 흙을 만지며 놀았다. 비석치기, 사방치기, 땅따먹기, 자치기, 연날리기, 제기차기, 딱지치기, 썰매타기 등등. 지금은 놀이 이름도 아련하다. 모든 놀잇감은 고사리 조막손으로 스스로 만들었다. 그 시절은 누구라도 그랬다. 여름이면 빗자루를 들고 잠자리를 잡으려고 연못가를 뛰어다녔다. 매미를 잡으려고 소꼬리 털을 뽑으려 다녔다. 길다란 나무가지를 구해 끝에 소꼬리털로 매미를 잡을 올가미를 만들었다. 사슴벌레는 참나무 수액을 좋아한다. 여름방학이면 사슴벌레를 잡으려고 참나무가 많은 동네 앞산도 날마다 올랐다. 시골에서는 이렇게 놀기에 정신없이 바빴지만 그 시절에도 대도시는 요즘 못지않게 사교육 열풍이 대단했다. 당시에도 초등학교때부터 영어와 수학 등 고액 과외열풍이 불었다. 오죽하면 중학교를 평준화하고 고교평준화까지 했겠는가. 부모가 강요했든 본인이 원했든간에 그 시절 고액과외를 했던 친구들. 성적에 인생을 걸었지만 그들이 늘 인생의 승자는 아니었다.

문득 왕충(王充)이 생각난다. 후한(後漢) 광무제 때의 사상가인 그는 보기드문 천재였다. 그의 저서 논형(論衡)은 지금도 명저로 손꼽힌다. 그런 그도 평생 벼슬은 변변찮았다. 말년에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 “귀하게 될 운명은 남들과 함께 배워도 홀로 벼슬하고, 함께 관직에 나가도 혼자 승진한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인들은 지금도 인생에서 첫째 명(命), 둘째 운(運), 셋째 풍수(風水),넷째 적음덕(積陰德), 다섯째 독서(讀書)순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공부를 많이 해도 음덕을 쌓는 것만 못하고 그것은 풍수를 알고 활용함만 못하며 아무리 풍수라 해도 하늘이 원래 정한 바 운명을 임의로 바꾸지 못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두보(杜甫)는 시로 친구아들에게 개관사정(蓋棺事定)을 얘기했다. 관 뚜껑 덮을 때까지 알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수험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 ‘성적에 목숨 걸지 말라’다. 잘 친 수험생들은 그들 나름의 길이 있고, 못쳤더라도 앞날은 더 화려할 수가 있다. 인생은 결코 성적 순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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