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운 것은 무엇일까…
나다운 것은 무엇일까…
  • 황인옥
  • 승인 2018.11.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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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스스로 머금은 빛깔
그 은은함에 답이 있었네
서양화가 김택상·갤러리 아소 조덕순 관장 ‘풀꽃 콜라보’ 프로젝트 마무리
1년간 작품-계절별 풀꽃 엮어 소개
전시 내용·사진, 내년 책으로 출간
“관계성이란 가치 속 필연적 만남”
형태없이 색으로 그려낸 ‘빛깔 그림’
서양 기법으로 동양화의 정수 담아
세계관 뛰어넘어 진솔한 내면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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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김택상 1년 프로젝트 전시가 갤러리 아소에서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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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상.

노출콘크리트 건물의 반을 뚝 잘라 벽면 하나를 훅 밀어냈다. 밀어낸 천장은 툭 틔워서 하늘과 바람과 햇살의 호흡을 들여놓고, 바닥에는 연못을 설치해 잔물결의 자박거림을 살려냈다. 자연주의 공간 아소(참 나를 찾아가는 곳) 갤러리다. 아소 갤러리와 작가 김택상의 조합이 처음부터 함께였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자연과 예술과 휴식과 사색을 공간에 담아낸 아소의 철학과 자연과 예술과 존재들 간의 관계를 통해 참 자아(정체성)를 찾아가는 김택상의 예술적 어법은 서로 다르지 않았다. 이 둘의 만남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필연이었을까?

“화이트 큐브는 작품을 팔기위한 자본지향적인 공간으로 우리 삶과 동떨어져 있다. 현대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공간은 번뇌로 가득한 일상으로부터 거리를 둔 자연의 일부로서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휴식과 같은 공간이다. 자연친화적인 내 작품과 아소는 그런 측면에서 닮아있다.” 작가 김택상의 설명이다.

◇서양의 서술법으로 기록한 동양의 정신세계

대구 수성구 중동의 주택가에 위치한 갤러리 아소에서 김택상의 작품과 갤러리 아소 조덕순 관장의 풀꽃 작품 콜라보레이션(이하 콜라보)전이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1월까지 1년 프로젝트로 진행됐다. 전시는 계절을 머금은 작가의 작품과 조 관장의 계절풀꽃을 콜라보해 소개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가을을 주제로 한 ‘시간에 머물다’전이 지난 10일 종료됨으로써 1년 프로젝트는 막을 내렸다. 그는 지난해 11월부터 겨울과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 사계절 동안 ‘빛으로 머물다’, ‘바람에 머물다’, ‘물빛에 머물다’, ‘시간에 머물다’를 주제로 전시를 진행해왔다. 1년의 전시 내용을 기록한 사진과 전시 내용들은 내년에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김택상의 작품을 시각적으로 분류하면 색면추상이다. 형태없는 색 작업에 따른 분류다. 하지만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작가는 ‘빛깔그림’이라는 명칭이 더 정확하다고 소개했다. 서양식 분류법과 그의 지향점이 서로 달라 작가가 새롭게 붙인 명칭이다. ‘빛깔 그림’은 TV에서 방송된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 분화구의 물빛을 보고 시작됐다. 그가 “분화구의 맑고 투명한 물빛을 보고 나도 저런 물빛을 표현해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겼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탄생한 평면 위에는 그 어떤 형태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빛깔(색)만 영롱하게 빛난다. 그렇더라도 서양미술에서 말하는 색으로만 그의 작품에 접근하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그의 색은 물성이 아닌 자연의 일부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연의 빛깔(색)이 시간과 바람과 빛의 반복으로 완성되듯이 내 작품도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물빛을 만드는 것이 자연환경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바람과 햇볕과 시간이라는 자연환경을 내 작업에 끌어들였다.”

작업은 지난한 반복과정을 거친다. 우선 아크릴 물감을 엷게 푼물을 일본에서 찾아낸 수채화용 캔버스천 위에 흥건하게 붓는다. 그리고는 물이 고이도록 모서리를 단속하고 하루나 이틀을 기다린다. 시간이 흘러 안료와 물이 분리되면서 안료가 캔버스천 위에 침전되는데 이때가 물을 버리고 말리는 시점이다. 작업은 물을 붓고 침전하고 말리는 과정이 수없이 반복된다. 작업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보면 천연 염색하는 것과 유사하다. 자연이 고색창연한 쪽빛이 그렇듯 , 그의 빛깔그림도 인간과 햇볕과 바람과 시간이 각자의 지분만큼 개입한 후에라야 완성된다. “인생에 완성이 없듯이 작품의 완성은 없다. 원하는 분위기가 나올 때까지 계속된다. 길게는 10년, 20년이 걸리는 작품도 있다.”

분명 서양화다. 서양의 물감(아크릴)으로 그린 색면추상이다. 그런데 동양화의 수묵담채처럼 은은하고 소박하다. 자연 순응적인 동양인의 심성을 빼다 박았다. 빛깔(색) 위에서 동양의 산수도 어른거린다. 고졸하기가 이를 데 없지만 침잠하는 침묵의 끝은 어디인지 가늠이 어려울 정도로 깊이감도 어른거린다. 서양의 물성으로 동양의 정신을 드러낸 일종의 동양화다. 작가는 “‘나 다움’을 표현했다”고 했다. 정체성에 대한 언급이었다. “타고난 기질과 환경으로부터 체득한 체질, 그리고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적 유전자(meme)가 합해져서 ‘나 다움’이 형성됐다. 그 ‘나 다움’을 캔버스에 옮기려 한다.”

◇동북아시아식의 관계적 보살핌의 모더니즘미술로 인류미술사를 풍요롭게 하고파

30~40대 시절의 김택상은 고민이 깊었다. 현대미술사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을 하면서 현대미술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과 다르지 않았다. 고민이 깊어가던 어느날 우연한 깨달음이 찾아들었다. 동양과 서양 언어의 생성원리를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현대미술사를 이해하지 못했던 상황이 이해됐다. 그때부터 ‘나 다움’에 대한 탐구가 시작됐다. 그가 “내가 현대미술사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서양과 동양의 세계관의 차이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종합적으로 관계적 사유를 하는 한자문명권 태생의 내가 이분법적이고 분석적인 사유를 하는 영어문명권의 역사를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나 다움’을 찾기 시작하면서 내면으로의 침잠이 시작됐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시공간적으로 어디에 있는가?’ ‘서구가 주도한 근대(모더니즘)란 무엇인가?’ ‘우리의 근대는 진정 우리가 우리자신의 삶 속에서 건져서 쌓아올린 근대인가?’라는 질문들이 끊임없이 오갔다. 그가 “그 질문들은 내가 나가야 할 방향을 찾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할 처절한 과정이었다”고 언급했다.

김택상은 침잠을 거치며 올라오는 질문들을 따라갔다. 그 끝에서 만난 것이 ‘빛깔’이 있었다. 그것은 물성으로서의 색이 아닌 스스로 자연에 존재하는 빛깔이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생명체는 빛에너지의 물화였다. “그들(서구)은 칠하려 했지만, 나는 빛깔(색)을 담으려 했다.” 그의 빛깔은 ‘우리다움의 서술법적 산물’이었고, 비로소 김택상 특유의 ‘빛깔그림’은 모습을 드러냈다.

물빛을 담기 위해 시작한 빛깔(색)작업이지만 지금은 빛깔(색)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자연을 담은 빛깔(색)이면 어떤 것이든 작업으로 끌고 온다. 자연빛깔(색)에 대한 선호는 어린시절의 기억과 관계된다. 그는 강원도 원주의 산골에서 초등학교까지 살았다. 강원도 골 깊은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자연이 품은 빛깔을 일상으로 만났다. “고추잠자리의 빠알간 빛깔과 진달래꽃의 고운빛깔에 마음을 빼앗기곤 했었다.”

‘생명의 순환’이라는 동북아시아(한자문명권)권 세계관은 세대와 세대의 연속, 자연과 인간의 공존 등의 관계 속에서 구현된다. 김택상이 언급하는 ‘나 다움’의 핵심은 바로 이 ‘관계성’으로부터 왔다. 그에게는 관계성이야말로 동아시아 정신의 정수다. 삶과 죽음의 순환, 세대와 세대의 순환이라는 동아시아 세계관의 시작과 끝에 ‘관계성’이 있다. 동아시아 작가로 사는 김택상은 이 관계성을 작품에 녹여내고 싶었다. 햇빛과 시간과 바람과 작가 자신이 작품에 동일한 비중으로 관여하는 것은 그런 맥락의 실천이다. 그의 작품은 생명의 순환 고리 속에서 건져 올린 ‘빛깔그림’이었다.

“갤러리 아소 조덕순 관장님의 풀꽃작품(분화)과 내 작품은 관계성이라는 가치 속에서 필연적으로 만나졌다. 그 필연적 관계 속에 갤러리 아소의 바람과 햇살과 시간이 새롭게 들어와 한바탕 흐드러지게 어우러져 놀아 본 것이다.” 문의 010-4217-448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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