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내린 물감에서 발견한 자연… 갤러리 문101 권기자 초대전
흘러내린 물감에서 발견한 자연… 갤러리 문101 권기자 초대전
  • 황인옥
  • 승인 2018.11.2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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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작품 ‘자연’ 연작 20여점
물감·오일 섞어 캔버스에 툭
우주·존재 다양한 정서 내포
권기자인물
권기자.

평면에서 두께감이 툭툭 튀었다. 콜라주( 인쇄물, 천, 쇠붙이, 나무 조각 등을 붙여서 구성하는 회화) 기법이 의심돼 손가락을 슬쩍 대봤다. 손끝에 전해지는 질감은 분명 물감. 작가 권기자의 색면회화다. “물감을 수없이 흘러 내기게 해서 얻어진 결과에요.”

서양화가 권기자 초대전이 대구 중구 방천에 위치한 갤러리 문101에서 열리고 있다. ‘자연(Natural)’ 연작 20여점을 선보인다. 전시작들은 평면회화와 말린 물감 덩어리로 만든 설치작품으로 구성된다.

작업 초기에 심취한 주제는 ‘공간’이었다. 작가는 하늘과 별과 천체를 통해 우주를 탐구했다. 광활한 우주를 드러낸 ‘우주(2000-2009’ 연작과 색과 면으로 표현한 바다가 연상되는 미니멀한 풍경 ‘Space Life(2009-2011)’ 연작도 발표했다.

이 두 연작을 통해 작가는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광대무변(廣大無邊)의 공간에 접근했다. 이를 통해 시공초월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존재 이전의 본질, 물질 이전의 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광활한 공간을 매개로 드러내고 싶었어요.”

2011년부터 시작한 ‘자연’ 연작은 우주에서 현실로의 회귀다. 심상 속 자연을 색면추상으로 표현했다. 전작 ‘Space Life’에서 표현했던 선들이 마음에 들어 ‘자연’ 연작에 차용했다. 아예 작품의 시작과 끝, 부분과 전부로 선의 역할을 확장한 것.

작업과정은 단순하면서도 지난하다. 수성 아크릴 물감과 오일을 섞은 재료에 붓을 담가 캔버스 모서리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한다. 이번 전시에는 바닥에 떨어져 마른 잉여물감을 층층이 쌓아 단면을 자른 설치작품도 ‘자연’ 연작이라는 제목으로 선보인다.

“‘우주’ 연작을 하면서 내면에 자리한 응어리를 완전 해소하지 못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좀 더 본질적인 내면의 형태를 고민하게 됐죠. 가변적이고 단순한 선은 그 과정에서 나왔어요.”
 

권기자-작품
권기자 작 ‘natural’

색을 많게는 15가지 정도를 겹친다. 15 종류의 색이 15겹으로 중첩되기도 하고, 몇 가지의 색을 최고 15겹으로 집적하기도 한다. 화폭이 크면 클수록 흘러내림이 중간에서 그칠 공산이 커, 위와 아래를 뒤바꿔서 작업을 해야 한다. 작가는 “우연성의 장난”이라고 했다. 흘러내림의 중첩, 흘러내리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우연성 등이 선의 집적, 색의 중첩 과정에 다양한 흔적들을 남기는 것. 작가는 이 흔적에서 “‘자연 풍경’을 본다”고 했다.

“색이 흘러내릴수록 흔적이 많아지고, 그 흔적에서 자연풍경을 연상하는 것 같아요. 묘하게도(웃음).”

수묵화에서 나는 먹향처럼, 그녀의 색면회화에서 물감 향이 진하게 풍겼다. 두께감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 물감향이 나진 않는다. 심리적 개입의 결과다. 그렇더라도 두께감은 묘한 감성을 다양하게 건드렸다. 한바탕 전투를 치를 듯 격렬한 부심(腐心)으로 이끌기도 하고, 반면에 한없는 고요의 세계로 슬쩍 손을 내밀기도 한다. 한 화폭에 다양한 정서가 오고가는 것.

“내가 표현한 ‘자연’ 속에는 단순한 자연만은 아닌 것 같아요. 광활한 우주, 존재의 근원, 그리고 현실의 자연 등 다의적인 개념이 함께 내포된 것 같아요. ‘자연’을 통해 ‘우주’ 연작보다 개념을 확장했다고 할 수 있죠.” 전시는 28일까지. 010-4501-2777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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