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생각과 표현이 곧 인격이다
<대구논단>생각과 표현이 곧 인격이다
  • 승인 2010.02.1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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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 교육학박사)

지난 설 연휴동안 모처럼 책을 뒤적이던 중 문득 시(詩)에 대한 몇 구절을 대하고는 이것을 우리의 평소 언어생활은 물론 모든 생활 규범으로 삼아도 손색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唐)나라 때의 승려시인 교연(皎然)이 지은 시에 관한 이론서인 `시식(詩式)’에 실려 있는 구절로 그 첫째는 시유사불(詩有四不)이다. 시를 지을 때 범하여서는 안 될 네 가지를 사항을 말하는데, 이에 따르면 `기세는 높되 격노해서는 안 될 것이니, 격노하면 풍류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힘은 굳세되 드러내어서는 안 될 것이니, 드러나면 도끼질을 당하여 다치기 때문이다. 또한 정서는 다감하되 어두워서는 안 될 것이니, 어두우면 졸렬하고 둔한 데로 넘어지기 때문이다. 재주는 넉넉하되 모자라서는 안 될 것이니, 모자라면 맥락이 손상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시를 지을 때 기세(氣)와 힘(力), 감정(情)과 재주(才)의 지나침을 경계하고 적절히 조절할 것을 강조한 말이다. 이는 바로 우리 일상생활의 근본 이치와도 통하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격노하는 바람에 좌초하게 되며 또한 잔재주를 부리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있는 정치가 및 각계 지도자들은 물론 우리 자신들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기세와 감정을 조절하고 재주를 가다듬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 구절은 시유사리(詩有四離)이다. `시에는 거리를 두어야 할 네 가지가 있다’는 뜻이니, 곧 시를 지을 때 벗어나야 할 네 가지 사항을 말한다.

이에 따르면 `설령 도의 정취를 기약한다고 하더라도 편벽됨에서는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경전과 사서를 인용한다고 하더라도 서생 같은 자세에서는 벗어나야 하며, 또한 고아하고 은일함을 숭상한다고 하더라도 우원(迂遠)함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날고뛰고 싶다고 하더라도 경박함에서는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시의 품격과 관련된 것으로 편벽된 자기주장만으로 도를 설파하거나, 남의 글을 자기 글인 냥 함부로 경사자전(經史子傳)을 인용해서는 아니 되며, 또한 실생활에서 지나치게 동떨어지거나, 발랄함이 지나쳐 경박해 보이는 것 등은 모두 시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것이므로 거리를 두고 멀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기고만장한 자기주장에 취해있었던가를 반성해야 할 줄 믿는다. 확실한 근거도 없이 자기 생각만을 강하게 내세우거나 또한 지나치게 재주를 부려 경박하게 굴지 않았는지도 반성해야 하는 것이다.

일찍이 `시경(詩經)’에서는 `시란 뜻이 가는 곳이다(詩者志之所之也).’라고 갈파하였다. 즉 `시란 뜻이 가는 곳이다. 마음속에 있으면 뜻이라 하고, 말로 표현하면 시가 된다. 정(情)이 마음속에서 움직이면 이것이 말로 표현되는데, 말로 표현하기에 부족하면 탄식하게 되고, 탄식으로도 부족하면 길게 노래한다. 길게 노래하는 것으로도 부족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흔들고 발로 땅을 구르며 춤을 추게 된다’라고 하였다.

`뜻이 가는 곳(志之所之)’이란 사람의 마음이 흘러가는 바대로 감정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곧, 개인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분출시키는 것이 시의 출발점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시에 대한 정의이기도 하지만 나아가서는 문학과 예술 전반에 대한 정의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닿아있는 구절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들은 우리가 생활하면서 무엇을 생각하며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서도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모든 시의 시작은 생각에서 비롯되며 모든 삶은 표현에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일찍이 공자(孔子)도 `시경’에서 `시 삼백이면 한 마디로 말해서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詩三百 一言而蔽之曰 思無邪)’고 하였고, `서경’에서도 `시는 곧 뜻을 말한다(詩言志)’고 하여 시를 뜻을 담는 그릇으로 보았다. 그렇다. 생각과 표현의 결집체가 바로 인격이고 품격이다. 생각과 표현에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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