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를 확대하라고요?
정시를 확대하라고요?
  • 승인 2018.11.2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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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우리아이 1등 공부법 저자)



지난 26일 수능점수가 발표됐다. 역대 최고의 난이도였다는 이번 수능에 도전했던 고3들은 자신의 점수를 받고 아마 인생 최고의 좌절을 경험했을 것이다.

국어교사도 못 푸는 국어문제, 영국인도 이해 못하는 영어지문, 수학자가 혀를 내둘렀다는 수학문제까지… 이번 수능과 관련된 기사를 읽다보면 ‘악명’의 정확한 의미가 이해될 정도다. 그런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는 항상 악명 높은 문제들을 보아왔다.

학력고사 시대였던 나는 물론 악명 높은 문제의 피해자였으며, 그 전의 예비고사를 본 선배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수능이 실시된 1993년 이후로 수없이 형식이 바뀌어오는 동안 수능은 물수능과 불수능을 오락가락했다. 쉬우면 쉬운대로,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시험은 아이들을 좌절시켰다.

한국의 시험은 아이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해 한국의 시험은 아이들을 서열화 시키기 위한 제도다. 특히 우리나라 객관식 시험은 1등급을 가려내기 위해 존재한다. 4%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를 나누기 위해 교사들은 특별한 아이가 아니면 절대 풀지 못하는 문제를 출제하고, 나머지 아이들을 좌절에 빠뜨린다. 아이들은 손도 못 대는 수학문제를 앞에 두고 12년 간 수없는 좌절을 경험한다. 우리나라 아이들의 수학선호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이유다.

내가 풀었던 수많은 객관식 시험을 통해, 나는 인생에 필요한 것을 배우지 못했다. 나는 친구와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에서, 학교선생님과 교감하면서, 내가 읽었던 책을 통해 인생의 도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나마 괴로운 학창생활을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이유는 내가 했던 좋은 경험들 덕분이지 시험 때문이 아니다. 12년 학창생활 중 수없이 반복되는 문제를 풀면서 나는 좌절감과 열패감을 경험했고, 나를 괴롭힌 낮은 자존감에 객관식 시험은 꽤 많은 기여를 했다.

‘시험을 보고 아이들에게 등수를 주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이게 왜 문제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은 당신이 푼 수없는 객관식 문제를 통해 인생에 도움이 되는 성과를 얻었는가?” 아마 “나는 학창시절 문제집을 푼 것이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되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이유는, 교육을 받기 전보다 더 나은 인간을 만들려는데 있다. 더 많은 것을 습득하고 그 속에서 인생을 발전시키라고 필요한 것이 교육이다. 인생을 통찰하고 열심히 살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이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아이들에게 영국인도 이해 못하는 영어지문을 읽히고, 수학자가 혀를 내둘렀다는 수학문제를 풀게 하는 게 옳은 교육적인지 말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항상 입시를 향해있고, 입시는 언제나 정치적이었다. 정치와 입시가 분리되지 못해 지금의 한국 교육이 이 모양이 되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에 적합한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정부가, 12년간 죽도록 문제를 풀다가 그 모든 노력을 단 하루에 평가받는 정시의 비중을 늘리겠다고 말한다. 헛웃음이 나온다.

객관식 시험은 아이들의 자유로운 생각을 현저히 저해한다. 아이들은 정해진 다섯 가지의 보기 중 교사가 정해놓은 답이 무엇인지를 고심하면서 점점 자신의 생각을 잃어간다. 객관식 시험이 미래인재를 키우는데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주입식 교육으로는 우리를 앞섰던 일본도 몇 년 전부터 입시에서 객관식 시험을 전면 폐지했다.

숙명여고 전 교무부장이 자신의 쌍둥이 딸들의 성적을 조작하기 위해 벌인 일들로 학생부종합전형의 신뢰는 땅으로 떨어졌다. 학종을 강조하다보면 내신의 압력이 커지는 것도 맞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교육이 교육적이려면 어떻게 변해야하는가?’를 고민해야지, ‘학종은 못 믿겠으니 정시로 돌아가자’고 해서는 안 된다. 특히 매년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는, 매년 문제의 오류를 발견하는 대한민국 입시에서는 더욱 그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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