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다운 나라
나라다운 나라
  • 승인 2018.12.0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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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누구에게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다. 이는 사람에게 지쳤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고, 삶에 더 이상 미련이 없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 예전에는, ‘내려놓고 싶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죽을 용기로 살지’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 노무현대통령의 부고(訃告)에도 슬픔보다 앞섰던 건, 믿었던 이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요즘 필자가 드는 생각은 위험천만하기 그지없다. 그의 안타까운 선택에 연민이 드니 말이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어떤 용기든 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믿어왔다. 잃을 것도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잃을 것이 없는 이에게도 간절히 ‘지키고 싶은 무엇’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혁이나 혁명을 이끌어가는 동력이 될 수 있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무산계급(無産階級)이었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라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번번이 이들에게 신세를 졌다. 그들이 가진 건 오직 ‘나라’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조선이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국호가 바뀌었다고 해도 그들의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제 강점기에도 예외 없이 그들의 신세를 졌고, 그로부터 반세기가 훌쩍 지났으니 몇 배로 갚아주는 것이 대한민국의 염치다.

대법원이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연이어 피해자승소 판결을 선고했다. 세월이 흘러 대부분의 피해자가 이 세상을 떠난 상황이지만, 모처럼 상식적인 판결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일본은 이번에도 비상식적인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있나보다. 일본 기업의 자산이 한국에서 압류조치를 당하면, 일본정부도 일본 내의 한국 기업의 자산을 압류할 수 있다고 협박(?)을 한 것이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한국 정부가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만간 조치를 취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이 주장하는 근거는 2001년 유엔국제법 위원회가 명문화한 ‘손해와 균등한 조치’조항이다.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과 구(舊) 미쓰비시중공업은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국치(國恥)를 자양분으로 성장해온 전범기업이다. 그들이 착취한 노동력에 대한 대가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 2008년 서울중앙지법에서 소멸시효를 이유로 들어 원고패소 판결을 내린바 있었다는 사실도 부끄러운데, 일본이 대놓고 외교적 선전포고를 하고 있는 것은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 정권이 공약으로 내건 슬로건은 ‘사람이 먼저인 나라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고 실천해가는 것이 그들의 책무다. 국가의 상식은 국권을 수호하는 일이기도 하다. 남북한이 미국과 중국에 남북 관계의 전반적인 사항들의 동의와 협조를 구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국제정세와 힘의 논리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인가보다. 아직도 독도가 누구 땅인지는, 우리만 아는 것 같다. 매듭을 짓지 못한 채 유야무야 지나가는 형국이다. 독도는 일본 시마네현 오키노시마정에 행정구역을 둔 다케시마로도 불린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우리나라 땅, 독도를 방문하겠다는데, 강력하게 항의를 할 수 있는 것도 그들이다. 36년간 민족말살정책을 펴며, 극악무도한 만행을 자행했던 그들이,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기여했다고 주장하는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당시에도 대한제국의 수뇌부들은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데 급급했음은 물론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반성과 사과를 모르는 일본의 화해치유대단과 같은 전술적인 모사(謀事)에 앞장서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

지난달 9일에는 안타까운 소식도 더해졌다. 종로의 한 고시원에서 거주하던 이들 중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한 참사였다. 화재에 대비한 어떠한 대비도 마련되지 않은, 이미 예견된 인재나 다름없는 사건이었다. 이번 사건은 비주택 거주자들의 생존권이 얼마나 방치되고 있었는지를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그 좁은 공간에서도 창문 유무에 따라 월세 5만원이 좌우되는 현실적인 잣대가 생사조차 갈라놓았다. 사람이 먼저라는 말이 무색한 대목이다. 숙박업소와 컨테이너, 비닐하우스 등을 비주택이라고 한다.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인권은, 월세와 보증금에 따라 하나둘 포기해야 하는 조건일 뿐, 반드시 지켜져야 할 권리는 아니었다. 정부에서는 발 빠르게 비주택자를 위한 대책 마련에 부산한 모습이다. 신속하게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좋지만, ‘보여주기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생존권은 어떤 경우에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의 토양을 마련해주는 일, 그것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상식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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