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사물을 그린다… 리안갤러리 29일까지 이창남 개인전
나는 지금, 사물을 그린다… 리안갤러리 29일까지 이창남 개인전
  • 황인옥
  • 승인 2018.12.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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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란 관념 표현의 수단이 아닌
구체적 사물을 담아내는 매체일 뿐”
눈앞 라디오·망원경 그려 현재 강조
단순 ‘보기’ 아닌 ‘수동적 보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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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남

엔틱한 느낌의 커피포트, 액체가 흘러내린 채로 말라버린 물감튜브, 연필꽂이로 쓰는 도자기, 먼지 수북하게 내려앉은 아날로그 라디오, 향수를 자극하는 오래된 망원경, 게 중 가장 세련된 색감과 형태의 작은 선풍기 등 온갖 잡동사니들이 벽면에 설치된 두 개의 선반 위에 무질서하게 놓여있다. 다양한 크기와 재질의 컵들과 그릇들이 가득 찬, 예쁜 레이스천이 드리워진 바닥의 그릇 진열장도 있다. 서울 성동구 금호동 옥탑에 있는 작가 이창남의 협소한 작업실의 사물 중 일부를 그린 작품들이다.

“작품 속 사물들은 제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작업실에 존재하는 것들이에요. 특별할 것 없는 제 주위 사물들을 구상으로 담았죠.”

화가 이창남 개인전이 리안갤러리 대구에서 29일까지 열린다. 작가 특유의 회화에 대한 철학이 묻어나는 구상화 30여점을 소개한다.

작가는 구상화만 그렸다.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남들이 추상화계열에 집중할 때 주류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 오직 구상화만 팠다. 그 일관성의 바탕에는 작가의 회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다. “제게 회화는 대상이 없는 상상계, 영적, 관념적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어요. 저는 오직 감각으로 식별 가능한 구체적 사물과 시공간을 담아낼 수 있는 매체로서의 회화만 바라봤어요.”

대상은 풍경이다. 풍경하면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작가는 도시 풍경과 일상에서 만나는 사물을 주로 그린다. 그에게 도시풍경과 자연풍경을 구분짓는 일은 무의미하다. “인간이 만든 풍경과 자연이 만든 풍경에 시각적 우열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저는 인간이 만든 풍경에 더 많은 존재성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이창남_Studio shelves
이창남 작 ‘Studio shelves’.

도시풍경이라고 하지만 엄밀하게 작가의 작업실 풍경이다. 고층 아파트를 그렸지만 그것 역시 작업실 창으로 들어오는 풍경일 뿐. 작업실 내에 무심하게 놓여있는 벽시계, 창문과 커튼, 작업실 밖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에어컨 실외기, 특별할 것 없는 창 밖 아파트 전경 등 눈길이 머무는 대상을 즉각적으로 그린다. “촬영하는 이의 능동적인 시선과 감성이 담긴 사진은 이미 과거에 불과하죠. 저는 그런 능동적인 과거보다 현장성과 현재성을 수동적으로 담아내고 싶어요.”

풍경은 자잘하다. 테이블의 모서리, 의자의 일부 등 의미를 덧씌우기에 뭔가 부족한 사물들이 주를 이룬다. 시선이 머물렀다고도 할 수 없는, 무심히 지나치기 일쑤인 일상적인 풍경들이다. 치열하게 보고 또 봐야 보이는 것들이다. 그가 “능동적인 ‘바라보기’가 아닌 ‘수동적인 보기’의 결과”라고 했다. “예술은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가장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봐요. 저는 제 주장을 펼치기보다 가장 보편적인 것을 통해 사물과 세상과 시간을 공유하고 싶어요.”

작품 속 분위기는 그윽하다. 딱딱한 사물이 부드럽게 드러나고, 현실성은 몽환으로 치환된다. 사물을 즉각적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하기에는 오묘하기 그지없다. 단순한 표현주의와는 다르다는 이야기다. 그가 “계속해서 현재를 그린다”고 했다. “한 가지 정물을 몇 년 동안 그릴 수도 있어요. 일 년을 고치고 또 고치면서 그날그날의 현재성을 담아내죠. 수많은 현재가 중첩되면서 마치 영상 같은 미묘한 시간들이 쌓이게 되죠.”

전시 제목이 ‘On the Wall-Drawings & Paintings’다. 그는 드로잉과 페인팅을 온전한 하나의 장르로 인식한다. 드로잉을 밑그림으로 치부하지 않는 것. “페인팅에 밑그림을 그리지 않아요. 드로잉은 드로잉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053-424-2203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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