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박사학위
우리 시대의 박사학위
  • 승인 2018.12.03 21: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우윤 새누리교회 담임목사
연말 또 한 번의 졸업 시즌이 다가온다. 졸업을 앞 둔 대학원생들이 학위논문을 최종적으로 가다듬기에 정신이 없을 때이다. 2018년도 교육부 통계에 의하면 올 한 해 국내 박사학위 취득자의 수는 약 일만 사천여 명이라 한다. 한 사람이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투자한 시간과 돈과 노력을 생각해 보노라면 일만 사천여 개의 박사 학위는 우리나라의 소중한 지적 재산이다.

내가 박사학위의 위용을 처음 경험하게 된 계기는 국문학자 조동일 선생의 강의를 통해서였다. 국문학과 인근 학문을 넘나들며 성실하고도 진지하게 강의하던 선생의 모습은 경영학과 신입생이었던 나의 혼을 빼놓을 만큼 탁월하였다. 서점에 달려가 그가 쓴 책에 소개된 그의 학문적 업적을 보면서 박사학위의 위엄을 느꼈던 그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나라 신학계 거장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세계 유명 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 분들의 강의는 육십을 바라보는 나의 가슴을 뛰게 할 만큼 감동적인 것이었다.

때로 나보다 나이가 어린 교수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강의에 진심으로 존경을 표할 수 있었던 것은 학문과 진리에 대한 경외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십여 년 전, 박사논문을 지도해 주시던 교수들이 생각이 난다. 이제 막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 강단에 선지 몇 년 되어 보이지 않던 그 분들은 정말 성실하게 나의 학위논문을 지도해 주었다.

엄격하지만 까다롭지 않았고 어긋난 문장 하나까지 수정해 주던 그들의 정성과 실력은 같은 학문의 길을 가는 제자이자 후배인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이선생, 공부를 참 잘합니다.’ 논문을 마무리하며 칭찬해 주던 그들의 훈훈한 마음은 그 후에 나도 다른 사람의 논문을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박사학위에 대한 추억은 항상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어느 날 후배 교수가 학위를 받았다며 논문을 내밀었다. 축하한다 말하며 논문을 읽어 보니 마음이 금방 불편해졌다. 그것은 그가 쓴 것이 아님이 너무나 분명하여 안색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도 눈치를 채고 당황해 하는 것이다.

어렵게 말을 꺼내니 그가 마지못해 실토하기를 실력도 부족하고 시간도 없어서 돈을 주고 논문대행기관에 의뢰하여 쓴 논문이라 한다. 우리는 한동안 서로 어색해 하며 어쩔 줄을 몰라 논문만 계속 뒤적이기만 했다.

박사학위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옅어지고 안타깝게도 부정적인 기억만이 누적되어 갔다. 한동안은 목사들의 가짜 박사학위와 돈으로 산 학위가 언론에 오르내리며 세인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서울 유명교회 목사의 박사논문 표절 문제도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학위 논문을 써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뻔 한 사실을 계속 부인하는 목사의 거짓말이 우리를 어지럽게 했다.

대구의 한 목사를 만나서 명함을 교환했다. 받은 명함을 보니 박사학위가 네 개나 된다. 뭔 학위가 이렇게 많은가 자세히 보았더니 학문적 소양이 미미한 내가 보기에도 돈 주고 가볍게 취득한 흔적이 뚜렷이 보인다. 그런데도 제법 자랑스럽게 학위를 자랑한다. 지방대의 박사학위라도 제대로 하려면 수많은 책을 읽고 고민하는 고생을 한 후에야 겨우 받을 수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박사학위로 인한 충격은 올해에 더욱 심하게 닥쳐왔다. 매우 잘 알고 친하게 지내던 신학교 교수의 논문이 완전히 가짜인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일로 인하여 이미 재직하던 학교도 사임했지만 알게 된 실상은 윤리적인 문제를 넘어 사법적 처리의 대상이 될 정도였다. 이것을 진상조사 위원회의 한 분을 통하여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내게 정말 큰 충격을 주었다. 이 문제만 없다면 그는 참 뛰어난 교수요 훌륭한 인격자인데 박사학위의 비밀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학위를 받은 후배와 제자들이 내미는 논문을 받아 한번은 꼭 읽어 보려한다. 그리고 “정말 잘 썼네. 참 훌륭한 논문이네.”라며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밥이라도 사며 그들의 정직한 수고를 격려하고 싶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