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젤리 낯선 조합 권력 부조리 꼬집다
독수리·젤리 낯선 조합 권력 부조리 꼬집다
  • 황인옥
  • 승인 2018.12.04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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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문화회관, 30일까지 성태향展
모순된 관계는 독수리, 인간은 젤리
유리로 된 전시장 안에 구조물 설치
관람자를 방관자로 설정 질문 던져
봉산-유리상자성태향4
성태향 개인전이 30일까지 봉산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3마리의 거대한 대머리 독수리 앞에 동물의 사체가 놓였다면 합리적인 풍경이다. 하지만 형형색색의 젤리 과자가 던져졌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독수리와 젤리 과자는 부조화이자 모순이기 때문이다. 이 둘 사이에 합리적인 연결고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성태향이 봉산문화회관 기획전 ‘먹이 제공터(Feeding Sites)’전에서 던지는 질문의 핵심이다.

“권력, 자본을 둘러싼 부조리하고 위태로운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보이지 않지만 우리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모순된 관계를 꼬집고 싶었어요.”

작가 성태향 개인전이 봉산문화회관 2층 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는 전시장 공중에 매달린 나뭇가지 위에 한 마리의 대머리 독수리를 설치하고, 바닥에는 날개를 접은 대머리 독수리 3마리와 그들 앞에 젤리 과자를 배치했다.

작품은 강원도 철원에 실제로 존재하는 ‘독수리 식당’에서 착안했다. 철원의 ‘독수리 식당’은 인근 정육점 주인들이 고기 부산물을 굶주린 독수리에게 던져주면서 시작됐다. 인간의 욕망으로 말미암은 생태파괴로 독수리가 먹을 사체가 부족하던 시기에 독수리들에게 던져진 고기 부산물은 달콤했고, 그 기억을 안고 이듬해에도 독수리들이 같은 장소를 찾아오지만 더 이상 고기 부산물을 버리지 않게 되면서 독수리들이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됐다.

“제공자는 제공 받는 자의 입장에서 먹이를 제공하지 않아요. 그러나 제공받는 자는 제공하는 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상황에 몰입하게 되죠. 결국 결말이 불행한 측은 제공받는 자가 되죠.” 인간과 독수리의 상하관계에서 관람자는 자연스럽게 우리사회에 존재하는 갑을관계와 수직관계를 떠올리게 된다. 작가는 “우리사회의 부조리한 구조를 독수리와 인간 그리고 젤리로 압축했다”고 했다.

작품에는 ‘제공하는 자’와 ‘제공받는 자’ 외에 ‘방관자’도 존재한다. 작가는 4면이 유리로 마감된 전시장 밖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자를 제3의 방관자로 상정했다. “불합리한 구조를 직접 개입 없이 바라만 보는, 우리 사회의 제3의 ‘방관자’에 대한 은유이자 그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죠.”

경북대 예술대 미술학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문제’를 다뤄왔다. 주제를 다루는데 매체 제한은 두지 않는다. 회화나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매체 중에서 주제 부각을 위한 최적의 매체라면 무엇이든 주저없이 선택한다. 이번 작품은 설치로 했다. 설계부터 완성까지 제작 기간만 1년이 걸렸다.

“최근에 직접 만드는 창작물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그는 현실감 있는 독수리를 만드는데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고백했다. 중국의 웹사이트를 뒤져 진짜 독수리 깃털을 구하고, 젤리도 직접 만드는 공을 들였다. “주제를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어요.” 전시는 30일까지. 053-661-350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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