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을 다듬으면서
콩나물을 다듬으면서
  • 승인 2018.12.04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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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을 다듬으면서

나란히 사는 법을 배웠다

줄이고 좁혀서 같이 사는 법

물마시고 고개 숙여

맑게 사는 법

콩나물을 다듬다가 나는

어우러지는 적막감을 알았다

함께 살기는 쉬워도

함께 죽기는 어려워

우리들의 그림자는

따로 따로 서 있음을

콩나물을 다듬으면서 나는

내가 지니고 있는 쓸데없는 것들

가져서 부자유함을 깨달았다

콩깍지 벗듯 벗어버리고 싶은

물껍데기 뿐,

내 사방에는 물껍데기뿐이다

콩나물을 다듬다가 나는 비로소

죽지를 펴고 멀어져 가는

그리운 나의 뒷모습을 보았다

◇이향아= 1938년 충남 서천 출생.1966년에 현대문학에 찻길, 가을은, 설경으로 등단을 하면서 시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기전여고 재직 당시부터 최명희를 가르쳤으며, 추후 작가로 키우고 돌봐주었다.1983년에는 본교인 경희대학교로 돌아가 강사로 활동한 뒤에 1987년 동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해설> 전원에서 허겁지겁은 어울리지 않는다. 목가의 도량은 조용조용 자연에 순응하며 계절을 거스르지 않는다. 성장한다는 것은 행복하기 위해 모든 게 완벽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배우는 것. 살다보면 누구나 놓을 수 없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무상한 게 세월이라고, 푸른 시절 순하고 환하던 얼굴대신 억지 웃음짓이 낯설지가 않다. 어느 덧 거칠어진 시선과 굴곡진 생각들의 다른 한 켠에서 여린 호흡 이어가는 감성의 여백과 마음의 여유 한 자락은, 오랜 세월 어우러졌던 껍데기들의 적막감이 자연스레 몸에 밴 흔적인지도 모른다. 지금 삶이 자연스러운 속도라면, 달려가 맞이하는 조급함 보다는 한 박자 늦추어 여유를 구해본다. 서두름 대신에 충분한 기다림으로 다듬어진 아름다운 죽지들과의 무던한 마주침이 자연스레 가슴 속으로 체화되어 우리네 정서의 주춧돌이 되고도 남음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성군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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