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졸업 뒤풀이를 보는 눈
<대구논단> 졸업 뒤풀이를 보는 눈
  • 승인 2010.02.1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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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객원 大記者)

뒤풀이라는 말이 사회 곳곳에서 제법 많이 쓰인다. 짧게는 아침에 만나 함께 등산을 하거나 배드민턴을 친 다음 술자리를 벌이는 것을 이르기도 하고, 길게는 몇 년 동안 기획해왔던 일이 마무리되어 한숨을 돌리게 되었을 때 동료들과 함께 잔치를 베푸는 일일 수도 있다. 뒤풀이에는 반드시 술이 따르게 되는데 잘 마쳤다는 기분에 지나치게 과음이 되어 실수를 하는 수가 많다.

술이란 마약과 같아서 어떤 사람은 알코올 중독으로 심신이 망가져 병원신세를 지는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거나하게 한잔 마시고 나면 없던 기운도 생겨나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런 정도의 애교는 누구나 받아드리는 상식 범위에 속한다. 이를 벗어나 남에게 시비를 걸고 주위를 괴롭히는 단계에 이르면 주정(酒酊)을 한다, 주사(酒邪)가 있다는 원성을 듣게 된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죄의식은 거의 없다. “나 혼자서 내 돈 내고 내 기분으로 마셨는데 무슨 시비냐” 하면서 옆 사람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오불관언이다. 주정이나 주사를 부리는 사람을 보면 습관성이 많다. 평소에는 멀쩡한 인격자로 알려진 사람이고, 점잖은 품격도 있었는데 술만 들어가면 사람이 표변한다. 말이 많아지고 이미 바닥난 술병을 계속 기울인다. 입에서는 듣기 민망한 욕지거리도 서슴지 않는다.

심한 경우에는 폭력을 행사하는데 아무리 말리려고 해도 술 먹은 장사 이겨낼 방도가 없다. 요즘 취객들의 행패가 경찰관서에까지 이르러 술집 많은 동네 파출소는 난장판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경찰관을 때려 형사 입건되는 수도 있다. `술 취한 개’라는 말이 내려오는 것을 보면 예전부터 술 많이 마시고 부질없는 행동을 한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쯤 되면 사회적으로나 가족의 입장으로 보나 그 피해가 막심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술에 취하지도 않은 어린 학생들이 과음한 어른 뺨치는 행동을 했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더구나 그런 일이 이미 예상되었던 일이고 해마다 되풀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하나 사전에 막아볼 생각조차 못했다고 하니 예방을 우선순위로 생각하지 않는 풍토 탓일까. 사실 범죄는 물론 까다로운 문제점이 예상되는 사건의 발생은 미리미리 손을 써서 사전에 막는 게 제일이다.

이번 사건은 고등학교도 아닌 중학교 졸업식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제 솜털도 채 자라지 않은 중학생들이 졸업식 직후에 뒤풀이를 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그것이 도를 지나쳤다는데 문제가 있다. 더구나 뒤풀이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에 그대로 노출시키는 대담성을 보인 것은 어른들의 주정과 뭐가 다른가. 어떤 판사는 술 마시고 흥분된 상태에서 어린이를 성추행한 것을 `정신미약’으로 판단하여 가볍게 처벌하는 판결을 한 일도 있는데 이것은 술도 마시지 않은 멀쩡한 정신으로 일을 저질렀다.

이 사건의 파동은 충격적이다. 처음에는 인터넷상으로 동영상이 떠도는 정도로 짐작했던 것인데 막상 TV로 비춰지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남학생뿐만 아니라 여학생들까지 완전히 발가벗겨진 게 아닌가. TV에서는 영상을 흐리게 만들었지만 인터넷에는 아무 가림도 없이 그대로 노출되었다고 하니 아무리 어린 학생들일지라도 평생 잊을 수 없는 수치스런 장면이다.

게다가 실명까지 게시되었으니 이는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범죄행위가 아닐 수 없다. 경찰에 불려나온 피해학생들의 진술에 따르면 선배들이 문자메시지를 보내 `졸업 빵’에 꼭 참석하라는 엄포가 있었다고 한다. 평소의 관행으로 나가지 않으면 심한 보복을 당할 것이 두려워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한다. 피해자들은 평소에 선배들에게 매를 맞는 것은 물론 돈까지 빼앗겨온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나 가해자나 모두 평소의 관행이라고 말한다지만 돈 가져오라고 위협을 가하고 구타를 자행했다면 그것이 어디 아는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관행이 될 수 있는가. 교복을 찢어발기는 것은 지긋지긋한 학교생활을 벗어났다는 해방감의 표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타인이 찢었다면 그것은 폭력이요 재산권 침해다. 과거 유생들이 성균관을 수료하면 입었던 청금(靑衿)을 벗어 던지고 찢었던 관행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균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한 일이다.

스스로 한 일과 남이 강제로 한 일은 엄연히 구별된다. 강원도 어느 항구도시에서는 여학생의 옷을 벗겨 바다에 빠뜨리기까지 했다니 자칫 인명피해가 날 뻔도 했다. 밀가루로 범벅이 된 학생들의 몰골을 보는 일반인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소년 소녀들의 치기로만 볼 수 없는 분노가 치민다. 예방이 가능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손을 놓고 방치한 학교당국이나 경찰 모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졸업은 끝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단계를 밟는다는 인식을 교육시키는 게 그다지 어려운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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