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면조를 사면한다니 - 무슨 죄가 있길래
칠면조를 사면한다니 - 무슨 죄가 있길래
  • 승인 2018.12.13 20: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후섭 아동문학가·교육학박사
얼마 전 추수감사절(秋收感謝節, Thanksgiving Day)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이른바 칠면조(七面鳥, turkey)를 사면(赦免)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칠면조에게 무슨 죄가 있었나? 알고 보니 추수감사절에 주로 먹는 칠면조를 풀어준다는 선언이라고 합니다. 즉, 축제일 때마다 식탁에 오르는 신세를 면하게 해준다는 의미가 우리말로 잘못 번역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미국사람들은 왜 가장 감사해야 할 날에 칠면조를 주로 먹느냐 하는 것과 또한 칠면조를 가리켜 왜 나라 이름인 터키(turkey)로 부르느냐 하는 것입니다.

칠면조는 칠면조과에 딸린 새로서 수컷의 경우는 몸길이가 무려 1m 20cm에까지 이르는 거대한 몸집을 자랑합니다. 얼굴에 늘어져 있는 살점이 빨강, 파랑, 검정, 청백 등 여러 색깔로 바뀌기 때문에 일곱 얼굴을 가진 새라고 불립니다.

필자는 이 칠면조를 중학교에 진학하여 처음 보았습니다. 필자가 진학한 중학교는 농업고등학교와 병설되어 있어서 학교농장 축사 울타리 안에 교재용으로 칠면조가 몇 마리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칠면조에 대한 첫인상은 우선 매우 커서 무겁겠다는 것과 코 위에서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이 살점이 출렁거리는 것을 보고 징그러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컷의 입장에서 보면 암컷의 관심을 끌기 위한 방책이었을 것입니다.

또 수컷이 암컷에게 다가갈 때에는 한쪽 날개를 땅에 끌어서 드르륵 소리를 내는 것도 볼만 했습니다. 아마도 자기 힘을 자랑하기 위한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날개를 활짝 펴는 공작(孔雀)도 그때 처음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닭과는 어딘지 낯설었습니다. 그 순간 ‘아, 이것이 바로 외래 문물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양에서는 축제 때에 이 칠면조를 오븐에 구워먹는 것이 전통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경우 지금도 추수감사절 하루 소비되는 칠면조가 약 4천500만 마리에 달한다고 하니 7명당 한 마리 꼴로 먹어치우는 셈입니다.

미국에서 칠면조가 각광받는 이유에 대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추수감사절을 국경일로 공표할 즈음, 미국 전역에는 매우 손쉽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칠면조가 널리 퍼져 있었다는 점을 첫째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당시 집집마다 식용으로 사육되고 있었는데 야생 칠면조도 매우 많았다고 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칠면조가 매일 달걀을 공급하는 닭과는 달리 순수하게 육용(肉用)으로 길러지는 가축이라는 점과, 대가족도 나눠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푸짐해서 명절용 음식으로 적합했다는 점을 둘째, 셋째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지난해 미국인들이 추수감사절용으로 구입한 칠면조는 평균 16파운드(약 7.3kg)짜리였다고 하니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닭의 7배 정도 크기입니다. 더구나 칠면조는 겨울 준비를 위해 먹이를 잔뜩 먹어 살이 올랐기에 추수감사절 요리 물품으로 아주 적당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칠면조가 터키로 불리게 된 사연은 일반적으로 터키의 상인들이 많이 취급하였기에 붙은 이름이라고 합니다. 터키 상인들이 북미산 칠면조를 유럽으로 들여오자 당시 아프리카에서 터키 상인들이 들여오던 뿔닭의 한 종류로 잘못 알고 ‘터키 가금류(turkey fowl)’라고 불렀는데, 그 뒤 ‘터키’로 줄여서 굳어졌다고 합니다. 당시 터키 상인들의 교역 품목을 ‘터키 밀’, ‘터키 옥수수’라고 불렀기에 이러한 유추가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미루어 보건대 칠면조에 대한 사면의식은 곧 목숨을 잃게 되는 칠면조의 상황을 상징적으로나마 면하게 해주어 다른 생명을 함부로 한데 대해 조금이라도 속죄하겠다는 심리가 반영된 게 아닌가 합니다.

이 모든 것은 문화적 산물입니다. 여러 문화적 상황을 이해해야만 더 바람직한 문화를 쌓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