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에 대처하는 엄마의 자세
기말고사에 대처하는 엄마의 자세
  • 승인 2018.12.1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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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 ‘우리아이 1등 공부법’저자
이번 주는 전국 대부분 학교들의 기말고사 기간이다. 어떤 학생도 시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고등학생일 것이다. 수시비율이 높아지면서 학교 내 내신이 치열해져서 지금 고등학교 아이들의 기말고사 스트레스는 고1 이라고 덜하지 않다. 고등학생인 딸아이가 받는 기말고사 스트레스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면 아이를 이 나라에 태어나게 한 것이 미안해질 지경이다.

아이는 어떤 날은 한껏 즐거운 목소리로 “찍은 게 많이 맞았다”며 즐거워할 때도 있고, 어떤 날은 축 늘어뜨린 어깨로 저녁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때도 있다. 그럴 때 나는 난감해진다. 아이에게 “힘내라, 다음 시험 잘 보면 되지” 같은 말은 하나도 위안이 되지 않을 게 뻔 하기 때문이다.

힘없이 방문을 닫고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왜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남들이 대학에 가니 나도 가야한다’는 마음 하나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공부는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재능’이 필요한 일이라 공부에 별 재능이 없었던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나는 학교로부터 ‘좌절감’이라는 선물을 매 학기마다 두 번씩 받았다.

노력하고 노력해도 오르지 않는 성적을 붙잡고 울던 어린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불쌍하고 안쓰럽다. 그때의 나를 만날 수만 있다면 가만히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귀에 대고 말해주고 싶다. “얘야, 그깟 성적은 네 인생에 아무 영향도 없는 아주 시시한 거야”라고 말이다. 이렇게 나이를 많이 먹고 보니 고등학교 성적은 좋은 인생을 사는데, 행복한 삶을 만드는데 아무 의미도 없는 수치였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울고, 좌절하고, 공부를 못하는 나 자신을 원망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때 내게 엄마가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크게 야단을 치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실망시키는 게 힘들어서 자주 성적표를 감추곤 했다. 엄마가 나를 위해 얼마나 희생하시는지 잘 아는데, 엄마가 내게 얼마나 큰 기대를 하고 계신지도 너무나 잘 아는데, 이런 성적 밖에는 가져다 드리지 못하는 것이 괴로워서 나는 우편으로 성적표가 도착할 때쯤이면 문 밖을 서성이다가 저 멀리서 우체부 아저씨가 올라오면 아저씨로부터 성적표를 받아서 얼른 숨겼다. 엄마가 나를 야단치는 게 무서웠던 게 아니라 엄마가 내게 실망할까봐 두려웠다.

지금 아이의 저 힘든 마음 안에 내가 기여한 바가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 내가 아이에게 “공부를 잘해라”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열망이 인간의 큰 무의식적 욕망임을 감안하면 내 아이 역시 나를 실망시킬까봐 두려울 것이다. 어린 시절 나처럼 말이다.

한국에서 공부에 대한 부모의 기대치는 언제나 아이의 실력보다 높다. 그러니 대한민국에 사는 아이가 공부로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은 불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만큼이나 어렵다. 그보다는 성적으로 부모에게 실망을 주는 아이가 수십, 수백 배는 될 것이 확실하다.

그 수많은 아이들이 지금 망쳐버린 기말고사를 생각하며 어린 시절의 나처럼 울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오르지 않는 성적에 좌절해서, 부모를 실망시킬 것이 두려워서.

아이는 그저 아이이기에 아름답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만 착하고 예쁜 게 아니라, 아이는 그저 존재 자체로 은혜다.

잘 먹고, 잘 자고, 웃으며 내 옆에서 종알종알 떠들고 있는 아이는 누군가와의 비교 대상이 아니라 그냥 사랑스런 아이일 뿐이다.

그러니 지금 시험을 보느라 고통 속에 있는 아이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을 올려라”같은 말은 하지 말자. 대신 “네가 시험을 못 봐도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해주자. “너에 대한 엄마의 사랑은 그까짓 시험점수에 흔들리지 않는다”고도 말하자. 이것이 바로 기말고사를 치는 아이를 대하는 우리의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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