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버전 새 시리즈
원작 마니아층 ‘취향 저격’
속도감 넘치는 액션 등 호평
스파이더맨이 마블 코믹스의 슈퍼히어로로 탄생한 것이 1962년이다. 그 캐릭터를 만든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스탠 리 명예회장은 지난달 95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흑백 TV나 어린이 잡지로 ‘왕거미(스파이더맨)’를 보고 손목을 내밀며 거미줄 쏘는 흉내를 내던 꼬마들도 이제 환갑 언저리가 됐다. 그런데 스파이더맨이 팬과 함께 나이를 먹어갈 수는 없다. 팬들이 바라지도 않을뿐더러, 어린 팬들이 성장해오기 때문이다. 스파이더맨은 늙어 가는 대신 변신할 수밖에 없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는 마일스 모랄레스라는 아프로아메리칸-히스패닉 혼혈 소년이 새로운 스파이더맨으로 탄생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스파이더맨의 신참 팬, 고참 팬을 두루 만족시킬 수 있는 애니메이션 영화로 국내외 반응도 호평 일색이다. 원제는 ‘스파이더맨: 인투 더 스파이더버스(Spider-Verse)’인데, 새로운 스토리 배경에서 시작하는 스파이더맨 이야기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원작은 마블 코믹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3권 스파이더버스’로 브루클린 출신의 10대 소년 마일스 모랄레스가 새로운 스파이더맨이 되고, 오리지널 스파이더맨인 피터 파커를 비롯한 다른 평행우주에서 온 5명의 스파이더맨들을 만나 세계를 구하는 이야기다. 그 속에 자신에 대한 믿음을 다져 한 단계 성장하는 청소년의 이야기와 헐리우드 스타일의 기승전‘가족’ 스토리가 녹아 있다.
개성 넘치는 6명의 ‘스파이더 피플’도 매력적이다. 힙합과 그래피티를 좋아하는 마일스, 권태로운 생활에 빠진 배 나온 이혼남 피터 파커, 시크한 매력의 스파이더 그웬이 주연으로 등장한다. 거기에 1930년대 범죄자들과 싸웠던 ‘스파이더맨 누아르’가 흑백으로 등장하고 일본 만화에서 나온 듯한 ‘페니 파커’와 동물 카툰에서 나온 듯한 스파이더 돼지 ‘스파이더햄’이 조연 캐릭터로 활약한다.
무엇보다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이 뒤섞인 독특한 스타일과 속도감, 박진감 넘치는 화면이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배경 이미지 위에 손으로 그린 그림이 어우러진다. 화면이 나눠지기도 하고, 인쇄 망점을 보여주는가 하면, 의성어가 화면에 나오기도 한다. 또 의도적으로 초점을 흐리게 잡은 화면은 잘못 인쇄된 만화책의 느낌을 전해준다. 과거에 대한 오마주뿐만 아니라 차원이동, 평행우주를 표현할 때의 특수효과와 역동적인 액션도 압도적이다. 거기에 포스트 말론과 스웨 리의 ‘썬플라워(Sunflower)’를 비롯한 OST도 영화에 더욱 풍부한 감성을 불어넣는다.
스파이더맨에 관한 모든 것을 꿰고 있는 ‘덕후’들에게 이 영화는 오래도록 명작으로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카메오로 출연한 고(故) 스탠 리 명예회장의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과거의 스파이더맨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이 진하게 배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향수나 회고취미에 빠져들지 않고 미래를 향한 자신감을 보여주며 균형을 잡는다. 과거를 되짚어 보고 앞으로 전개될 새로운 스파이더맨 세상에 대해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스파이더맨 팬이 아니라 해도 새로운 감각의 영상과 음악이 신선하게 다가올 영화다.
김광재기자 contek@idaeg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