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巫山)의 꿈
무산(巫山)의 꿈
  • 승인 2018.12.16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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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무리지어 함께 공동의 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소의 구성단위는 가정이 될 것이고, 최대는 국가라고 볼 수도 있다. 대개 국가와 국가는 무장한 채, 지구촌의 질서와 제한적인 평화를 유지해가며 존속하고 있다. 점층적인 구조의 틀에서 가장 위험하고 중요한 것은 역시 가정이다. 요즘 ‘사랑’없는 가정이 현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사랑으로 결혼을 선택해서 출산을 하고, 함께 양육을 하며 해로(偕老)하는 것이 부부의 도리다. 도리(道理)는 즐거워서만은 아니지만, 억지는 더더욱 아니어야 한다. 다만 부부로서 그 정도의 의무감은 유지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의 끝은 책임’이라는 말도 있다. 가정폭력이나 그 외 치명적인 균열까지 감내하며 책임지라는 의미는 아니다. 지옥처럼 힘든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한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그럴 때는 헤어져야 하는 것이 옳다. 지금은 이혼에도 합의가 필요하고, 원만하지 않을 경우에는 소송도 불사하는 것이 사랑의 끝이 되어 버렸다. 친권을 포기하는 것조차 망설이지 않는 가장들도 늘어나고 있다. 미혼의 청춘들이 결혼을 망설이는 이유는 기혼자들이 희망과 사랑을 보여주는 것에 인색했던 탓도 크다. 국가 위기의 하나로 꼽는 저출산의 원인도 다른 곳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옳다. 단순한 경제논리로 저출산을 이해할 것만이 아니라, 사랑과 책임의 부재에 따른 사회적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오히려 논리적일 수도 있다.

무산지몽(巫山之夢)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초나라 양왕의 선왕(先王)이 꿈속에서 만난 무산(巫山)에 산다는 한 여인과 정사를 나누었다는 데서 만들어졌다. 그 여인이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양대(陽臺)에 머물겠다고 하지만, 낯선 여인과의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미화하는 몽정일 뿐이다. 일탈의 욕구는 범인(凡人)이나 임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양이다. 배우자의 외도가 과거에는 법으로 금하고 처벌을 내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위헌으로 결정이 났다. 혼인빙자간음죄는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를 처벌하는 죄였으나. 2009년 11월 26일자로 위헌 판결을 받았다. 그뿐인가. 간통죄는 2015년 2월 26일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헌법에 위배된다고 62년 만에 폐지되었다. 이젠 법적으로 외도를 처벌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80년대에는 의사나 검사 등의 전문직을 사칭하여 부녀자들로부터 수차례 금품까지 수수한 사건은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당시 사회 전반에 만연했던 ‘사자(士者)신드롬’을 보여준 사건들이었다. 단 여기서 ‘음행의 상습적인 부녀’는 보호받을 수 없었다. 음행의 상습이라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흔히 외간 남성들과 평소 얼마나 잘 어울려 다녔는지, 부적절한 장소를 얼마나 자주 드나들던 여인이었는지가 해당될 수 있겠다. 물론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보수적인 잣대였겠지만, 음란한 여성만큼은 보호해주지 않겠다는 법정신이 놀라울 따름이다. 어떻게 구별해낼 수 있을까 의문이지만, 으름장 정도로 이해하고 이미 폐지된 법안이니 더 이상 왈가왈부할 가치는 없어 보인다.

12월중에는 각종 모임들이 한창이다. 좋은 인연들과 뜻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설레는 기간이기도 하지만, 우려되는 잠재적인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남녀가 어울리다보면, 잦은 술자리에서 씻을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가 일어나기도 십상이다. 건전한 교제와 부적절한 교접은 마음먹기에 따라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순수한 욕망과 동물적 욕망은 언제나 아슬아슬한 잣대를 두고 가늠해 왔다. 인류를 위한 학문과 예술의 발전을 가져온 것이 순수한 욕망이라면, 암수의 교접, 특히 출산을 고려하지 않은 쾌락의 욕망은 인간들의 욕정에 불과한 것이니, 격이 떨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완벽한 타인’은 관객들에게 큰 공감과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소름끼칠 만큼 솔직하고 담담하게 그려낸 이 영화는 특별한 기교나 배경이 없다. 불륜커플에서부터 소수성애자까지 분포가 다양하다. 영화가 시작되면 한동안 부유층의 살림살이와 화려한 식탁,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관객으로 하여금 부러움을 자아내지만, 후반부로 가면서 점점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으로 한숨을 내쉬게 만든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휴대폰을 공개하자는 데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마침내 진실과 마주하면서, 흔들리는 자아들을 만나게 된다. 불완전한 사람들과 완전한 기록들과의 고투(苦鬪)가 보는 이로 하여금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누구나 무산(巫山)의 그녀 혹은 그를 꿈꾸고 있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인간이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이를 참아내고 이겨내는 것 또한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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