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斷想
연말 斷想
  • 승인 2018.12.1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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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청
부국장
조금씩 나이를 먹다보니 눈물이 늘었다. 예전엔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에도 툭하면 눈물이 난다. 세상의 숱한 일들을 하나하나 헤아려보는 직업인지라 하루에도 다반사로 격한 일들을 맞닥치련만, 일면식도 없는 어느 곳의 누가 나쁜 일을 당했다는 소식이 눈앞에 당도하면 벌써 그 사람의 심정이 되어 눈물이 그렁그렁 한다. 마음씨 좋은 이웃이 자기보다 가난한 이웃에게 보태달라고 쌈짓돈을 쾌척했다는 소식을 들어도 마음속에 어느덧 감동의 물결이 출렁여 울컥하고 만다. 사춘기도 아닌데 괜시리 모든 일들에 마음이 촉촉해지는 게, 내가 왜 이러나 싶다. 옛날엔 양정모가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면 TV에서 ‘우리들은 대한건아~’ 라는 노래가 흘러나올 때 애국심 같은 감정이 끓어올라 눈물이 나왔는데, 요즘은 시도 때도 없다. 박항서 감독이 “내 조국인 대한민국도 베트남 국민 여러분, 사랑해 주세요”라고 했다는 말을 전해들을 땐 그야말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이니, 이게 나이가 들고 있는 탓인가 싶기도 하다.

한때 교전국이었던 베트남과 우리나라의 과거 아픈 상처를 씻는 데 박 감독의 역할이 클 것으로 기대된다. 마침 우리나라와의 경제교역도 중국 미국, 다음이 베트남이니 이번 일을 기화로 베트남과 우리가 문화를 공유하고 시장을 넓히고, 옛 상처를 다스려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든다.

시장을 넓히는 경제 이야기를 하자니 최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19년 경제정책방향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하면서 “범부처적으로 내년 최저임금 인상 여파 최소화 대책을 추가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던 게 생각난다. 최저임금 근로시간 등등 많은 국민들이 ‘못 살겠다’고 아우성일 때도 억측스레 밀어붙이던 정부 경제정책의 기조가 이제야 바뀌는가 라는 일말의 기대감이 들었다. 경제정책 방향의 방점이 경제 활력 제고에 찍히면서 “소득주도성장을 외쳐 온 정부 정책 기조가 선회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홍 장관은 “어려운 경제 여건을 고려했다”고 답했다. 확실히 정책선회를 얘기하진 않았지만, 정책의 방향이 살짝 바뀐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전가의 보도처럼 간직하며 꿈적도 않고 버텨왔던 소득주도성장이란 정책의 핵심인 최저임금 고용시간 등에 속도조절이 시작된 것이다. 일자리 주도 소득성장이라는 개념이 경제 활력 높이기에 조금은 방해물이 된다고 인정한 셈이다.

연말이 되어서야 조금씩 경제의 틀을 바꾸려는 정부의 노력을 보면서 진작 이런 노력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든다. 지금까지 소득주도성장을 견지하려 애썼었던 과거를 돌아보면 이마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드는것도 사실이다.

박항서 감독의 영광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정치를 되돌아본다. 여전히 상대방을 부정하고 배제하고 공격하는 모습은 참 살벌하다. 이젠 하도 자주 봐 와서 살짝 지겹기까지 하다. 남의 환경과 상태를 인정하고, 더 나아지도록 겸손하게 다가가는 모습은 잘 보기가 쉽지 않다. 대신 나는 항상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주장만 난무해 연말까지 죽 진행돼오는 정치판 풍경을 보면 박 감독에게 배우라고 전하고 싶다.

남북 관계도 마찬가지다. 비핵화 라는 핵심은 비껴가며 오로지 평화라는 두 글자에 기대어 국정원의 국내활동 해체부터 휴전선과 동해안의 GP, 철조망, 한강하구 철책까지 다 들어냈다. 비핵화가 분명할 때 해도 되는 조치들이 아닌지 묻고 싶다. 군복무 기간 단축에다 해병대까지 감소하는 마당이니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가 없는데도, 평화라는 두 글자에 이 모든 우려를 다 덮어야 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얼마전 신문사에서 중소·벤처 기업인들에게 고생했다고 나름의 상을 주는 행사를 가졌었다. 그런데 상을 받는 기업인들을 지켜보노라면 노력한 대가로 상을 얻었다는 그네들의 함성보다는 이 어려운 시기에 얼마나 연마를 했을까 얼마나 남몰래 괴로운 투쟁을 해 기업을 일으켜 세웠을까를 생각하면서 또 울컥해 졌다. 이러니 요즘은 내게서 눈물이 흔할 수 밖에….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마냥 즐거움이 충만한 감정 속에만 있었다면 이만큼 마음속에서 눈물이 흔했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어딘가가 부족하고, 무엇인가가 모자라는 것 같은 많은 경험들이 발현해 눈물이 흔해진 듯하다. 심지어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소식에도 눈물이 흐르는 판국이니, 이 시작도 끝도 없는 원인도 이유도 없는 흔한 눈물은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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