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률 낮추기, 인권보다 생명권 우선을”
“자살률 낮추기, 인권보다 생명권 우선을”
  • 정은빈
  • 승인 2018.12.18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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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문한 최재동 美 공인 심리치료사
한국, 자살하기 쉬운 구조
일상적인 부분부터 따져야
美는 고위험자 강제입원 가능
대부분 살려줘 고맙다 하더라
인간성이 자살 예방의 기본
존중·공감 능력 적극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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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공인 심리치료사 최재동 씨는 “한국의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선 생명권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게 가장 우선이다”고 강조했다.


12,463.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 숫자다.

지난해 전국에서 모두 1만2천463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국내 자살률은 최고치를 찍은 지난 2011년(10만명당 31.7명) 이후 급감해 2013년부터 연이어 하락 중이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1위 수준이다.

자살률이 한국 절반 수준인 미국(10만명당 13.6명, 2016년 기준)의 공인 심리치료사 최재동(미국명 제이 최·61)씨는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의 강연을 위해 한국을 찾아 지난 13일까지 2주간 머물렀다.

최씨는 “한국은 일상 속에 자살할 수 있는 도구가 너무 많다”면서 “한국의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선 생명권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게 가장 우선이다”고 강조했다.

최씨는 대구 달서구 월배지역 출신이다. 월배초, 대건중, 대구고를 졸업했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정치학)와 샌프란시스코대 대학원(심리학)을 졸업한 뒤 2005년부터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카운티 교도소의 심리분석관으로 일하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 자살예방을 위한 전문가로 활동 중인 최재동씨를 만나 우리 사회의 자살 문제에 대해 들어봤다.

- 우리나라 자살률은 지난 12년간 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할 만큼 높다. 첫 번째 원인을 꼽자면.

△ 우리나라는 사회 전반적 분야에서 협상 능력이 부족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협상력이 부족하도록 교육을 받아왔다. 협상은 타인과의 협의인 동시에 나와의 협의 과정이다. 협상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은 쉽게 ‘욱’하는 성질을 갖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극한 상황에 도달하면 다른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기 쉽다.

환경적으로도 한국은 자살하기 쉬운 구조를 갖추고 있다. 외국에서는 건물의 창문을 열 수 있는 폭이 아주 좁다. 옥상에도 함부로 올라갈 수 없다. 한국에선 건물마다 CCTV와 경비원을 두고 있는데도 옥상 출입에 대한 규제와 관리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자살 예방은 특별한 게 아니다. 일상적인 부분부터 따져야 한다.

- 국내 자살 추이를 보면 노년층 자살률은 줄지만 10~20대 자살률은 증가세다. 세계적 추세인가, 우리나라의 특징인가.

△ 한국의 특징이다. 노년층 자살률에 큰 변동이 없는 건 이미 너무 높은 수준까지 올랐기 때문이다.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단연 1위다. 다른 나라보다 2~3배 높은 수준이다. 노인 자살은 주로 우울증에서 비롯된다. 시대는 급격히 변화하고 노인들은 30~50년 전 역할과 현재 젊은 사람들의 차이가 너무 크다고 느낀다. 그만큼 고독감도 커진다. 식사와 약물, 치료를 거부하는 간접 자살도 흔히 일어난다.

- 자살 예방이나 대처법에 있어 한국과 미국의 가장 큰 차이점은.

△ 미국에서 다리 아래로 뛰어내리려던 사람을 경찰이 붙잡아 집으로 돌려보냈다는 한국 뉴스를 보고 가슴이 철렁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자살 시도자나 응급한 사람에 대한 대응책이 너무 약하다. 자살 시도자는 정신적으로 심각한 중상을 입은 사람이다.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해 전문가가 판단하도록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외상이 없으면 함부로 이송할 수 없다.

미국에는 응급정신과병원 강제입원 제도가 있다. 3일까지 강제입원이 가능해 ‘72 hours hold’ 제도라고 부른다. 단 며칠이라도 안전하게 보호하면 반복성과 모방성, 즉흥성 등 자살 시도자가 지닌 성향을 크게 낮출 수 있다.

- 응급정신과병원 강제입원제도는 한국인들에게 다소 생소하다. 제도와 절차에 관해 설명해 달라.

△ “죽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심리분석관 등 전문가가 분석을 하는데 구체적인 자살 계획이 있으면 강제입원이 필요한 환자로 본다. 신고를 하면 경찰과 소방이 출동해 그 사람을 카운티별로 지정된 응급정신과병원으로 데려간다. 의료진이 평가해 위험한 수준으로 여겨지면 최대 3일까지 입원하도록 조치한다. 이후 재평가 결과에 따라 입원 기간을 최대 14일까지 늘릴 수 있는데 연장을 위해선 법원 허락을 맡아야 한다. 신청서를 작성해 정신질환 전문 법정에 접수하면 된다.

응급 상황이기 때문에 법적 절차나 보호자 동의 등으로 입원 시간을 지연하지 않도록 한다. 보호자 동의는 18세 이하 환자만 필요하고 재판부에 정신의적 지식과 인력이 충분하기 때문에 법원 동의를 얻는 것도 단시간에 해결된다.

- 한국에선 자살하는 사람에 대한 부정적 시선도 있다. 대중의 인식 면에서도 한국과 미국은 차이가 크다고 느끼는지.

△ 아주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생명권과 인권의 우선 순위다. 미국에선 응급 상황 시 생명권을 우선하는 반면 한국은 인권을 우선한다. 한국에도 강제입원제도와 유사한 제도가 있는데 사실상 시행할 수 없다. 강제입원이 환자의 인권 침해라는 여론 때문이다.

하지만 응급 환자를 대할 때 중요한 건 여론이 아니다. 미국에서 환자 수백 명을 강제 입원시켰지만 단 한명의 가족도 항의한 적이 없다. 반면 살려 줘서 고맙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환자의 상태는 담당 의사가 가장 잘 안다. 외부의 감정이나 의견보다 전문가의 의견을 더 존중해 줘야 한다.

- 현재 우리나라의 자살 예방 정책에 아쉬운 점과 나아가야 할 방향은.

△ 한국 사회는 최근 인간성을 많이 잊어버린 듯 보인다. 인간성은 자살 예방의 기본이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공감 능력을 어릴 때부터 교육을 통해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학부모들은 자녀가 학교에 다녀와서 가방을 던져도 “예의 없다”고 혼부터 내기보다 아이 말을 들어 주고 “힘들었겠다”고 답해줘야 한다.

제도적으로 단기간 안에 효과를 보기 위해선 구별로 1~2개 응급정신과병원을 지정하는 방안이 있다. 지자체장은 지정 병원이 자살 고위험자 진료 시 외부 영향을 받지 않도록 조례 등을 마련해 제도 운영을 도우면 좋겠다.

수사 기관에서도 자살과 예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검찰에 출석해 하루 조사를 받고 나면 보통 사람은 모든 정신이 피폐해진다. 검찰 조사를 받던 도중 자살한 사람도 여럿이다. 심리 전문가가 검·경찰 조사에 참석할 필요가 있고 특히 상대적으로 압박감이 큰 유명인을 조사할 때는 반드시 전문가가 옆에 있어야 한다.

- 매년 한국을 찾아 강연을 펼치고 있는데, 앞으로 대구에서의 활동 계획은.

△ 2011년부터 경북대와 영남대, 대구교육청, 대구경찰청 등 여러 곳에서 자살 예방과 노인 우울증, 스트레스 관리 등에 관해 강연했다. 노력하면 자살률은 낮아진다. 앞으로도 1년에 1~2번 한국을 찾아 선진적 자살 예방 제도를 소개하고 하고 한국에 도입될 수 있도록 돕겠다.

정은빈기자 silverbin@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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