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캉스에서 만난 박항서
바캉스에서 만난 박항서
  • 승인 2018.12.20 21: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경선 대구교육대학교 교육대학원 아동문학교육 전공 강사
베트남여행 마지막 날인 12월 15일 아침, 호치민 시의 한 호텔에서 떠나려고 짐을 싸는데 여행 가방을 들어주러 온 호텔 직원(porter)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또이 또 바캉스!” 하며 발로 공을 몰다가 차는 시늉과 함께 엄지척을 해보였다. 그제야 그가 외친 바캉스는 여름휴가를 뜻하거나 마시는 음료수를 말하는 바카스가 아닌 박항서 감독 이름임을 알았다.

그러고 보니, 그날 저녁에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축구팀이 말레이시아와 2018 동남아시아축구연맹(AFF) 스즈키컵 결승 2차전을 치르는 날이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인 나를 보고 반갑다는 뜻으로 그 나라 발음으로 “또이(나는) 또(좋다) 바캉스(박항서)!”를 외쳐댄 것이다. 박항서 감독이라면 지난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을 시작으로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베트남을 4강으로 이끌었고, 스즈키컵 경기에서 뛰어난 전술 역량으로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결승경기는 말레이시아와 어웨이 경기에서 2대 2로 비겨서 홈경기인 축구 결승 2차전 경기는 1대 1로 비기기만 해도 승리를 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었다. 그날 경기는 하노이에서 열렸지만 응원 열기는 호치민에서도 우리나라 2002년 월드컵 경기를 방불케 하였다. 붉은 티셔츠에 베트남 국기인 금성홍기를 붙인 젊은이들이 우리나라 광화문 광장 같은 인민위원회 청사 앞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모여들었다. 가이드의 말로는, 이기게 되면 오토바이 축하 퍼레이드를 벌이기 때문에 찻길이 막힐 것이란다. 축구 경기가 시작되는 저녁 시간에 호치민의 야시장을 돌아보는데 시장통의 큰 식당이나 술집에서도 대형 스크린을 아예 밖에 내다 걸어두었고 꽉 찬 좌석은 물론 서서 보는 시민들로 붐볐다. 유리한 경기 상황이나 한 골이 들어갔을 때 소리 지르며 풀쩍풀쩍 뛰는 모습에서 온 국민이 하나 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드디어 1: 0으로 승리하자 시민들은 ‘바캉스, 바캉스!’하며 박항서 감독의 이름을 그들 나라 발음으로 외쳐대었다. 이로써 베트남은 2008년 이후 10년 만에 스즈키컵 정상에 오르며 A매치 경기 16회 최다 무패행진의 역사도 함께 이루었다. 우리 여행단은 우리나라가 우승한 것인 양 울먹거렸다. 미안함 많은 나라에 우리 국민 중 한 사람인 박항서 감독이 사죄의 선물을 드릴 수 있었음에 감사하여서….

그러면서 우리나라 6·25 전쟁과 일제 강제 침략과 베트남 파병 사건이 동시에 떠올랐다. 6·25 전쟁으로 우리 국민들이 죽어 갈 때 일본은 미국의 지원으로 군수품을 생산하고 중공업과 중화학공업을 발전시켜 경제대국이 되었다. 월남전에서도 아시아에서 일본만 미국군수품을 만들 수 있었기에 그 바탕 위에서 오늘의 경제부흥기를 이루었다. 그래도 일제는 강제 침략하여 살생과 만행을 저지른 과거 일을 사죄할 줄 모르는 민족이다.

우리나라를 돌아본다. 월남전에 참전한 것은 남북 대치상태에서 군사적으로 미군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고 ‘6·25 전쟁 때는 UN군의 지원을 받은 보답으로 자유 월남을 지원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에서였지만 지금의 베트남인들에게 살생의 죄과가 크다. 그 과정에서 우리 군인들도 전사하거나 고엽제병에 걸려 돌아오고 참전의 대가로 받은 월급 일부를 빈약한 국가재정으로 사용하여 경부고속도로를 놓기도 하였다. 뒷날 한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베트남 정부에 과거 월남전에서 한국군이 민간인에게 피해를 입힌 점을 공식적으로 사과하며 시민단체도 위령을 위한 활동을 해왔다. 이 점에서 우리나라는 식민지로 점령하여 살생을 일삼고도 사과할 줄 모르는 일본과 같이 뻔뻔한 나라가 못 된다.

이에 베트남 정부도 ‘한국으로부터 해외투자를 유치하고, 취약한 경제개발을 위해 한국과의 유대관계를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역사적 피해를 감수한다’는 외교적 판단으로 수교를 하며 용서를 해왔다. 그리고 오늘, 베트남의 텔레비전 VTV1은 박항서 감독을 ‘올해를 빛낸 최고의 인물’로 선정하였다. 박 감독은 평소 축구협회에서 보내주는 차도 사양하고 사비로 택시만 타고 다녔다고 한다. 자동차 업체 타코 그룹이 보낸 우승 축하금 10만 달러(한화 1억 1300만원)를 그 나라 축구 발전과 빈곤층을 위해 기부하려고 내어놓았단다. 그는 돈 욕심도 없고 축구만 하려고 했다니 참으로 떳떳하고 자랑스럽다. 그리고 “베트남 국민이 나를 사랑해주는 것처럼 한국도 사랑해줬으면 좋겠다. 축구지도자라는 작은 역할이 조국 대한민국과 베트남의 우호 증진에 도움을 줄 수 있어 영광스럽다”고 소감을 말했을 때 그의 애국심에 우리는 또 한 번 목이 메었다.

우리 여행단이 호치민 바캉스에서 만난 것은 박항서 감독이 아니라, 박항서 감독을 좋아하는 베트남 사람들과 박항서 감독의 인간성이었다. 그런 박항서 감독의 공로에 뿌듯함을 느끼며 호치민 국제공항을 기분 좋게 빠져나왔다. 그렇지만 인도주의를 사랑해온 우리나라 국민들은 베트남에 억울하게 죽은 영령들이 있는 한, 지은 죄를 두고두고 미안하게 생각해가야 할 것이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