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인생은 마라톤-대학 입학
<대구논단>인생은 마라톤-대학 입학
  • 승인 2010.02.21 14:3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희흥 (대구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최근 대학 입학시험의 결과가 발표되었다. 대학의 결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인생에 있어서 본격적인 경쟁의 첫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누구의 자식이 어느 대학, 무슨 과를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모두의 관심사다. 학연, 혈연, 지연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사회에서 대학은 새로운 출발점의 시작이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면 모든 시험이 끝났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졸업식 뒤풀이하는 학생들을 보면 모든 시험의 구속에서 벗어났다는 표정들이다. 그러나 고등학교의 졸업은 시험의 끝이 아니라 본격적인 시작이다. 학생 때는 빨리 어른이 되어서 시험을 안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어른이 된 후 바라본 사회는 더욱 보이지 않는 시험에 더 많이 시달린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는 시험에 대한 강박이 없었을까?

흔히 조선시대에는 인구가 지금 보다 적었고, 양인 이상 이면 누구나 과거를 통해 관료가 될 수는 있었다. 실제 일부 양반이 관직을 독점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시험에 대한 시간투자와 재산 낭비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시험 과목도 평소 공부하던 한문을 그대로 보는 것이니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요새처럼 비싼 과외도 없을 것이며, 서울과 지방의 차이, 내신과 시험 문제 유출로 세상이 시끄럽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위인전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10대에 장원급제하였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니 더욱 시험 걱정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10대에 장원급제하는 것은 오늘날로 치면 신문에나 나오는 천재들의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세상에는 시험이 존재하고, 그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노력은 고난의 연속이다. 조선시대 관리를 선발하는 시험은 문·무과, 잡과 등이 있다. 이 시험은 3년마다 일정 인원을 선발하는 식년시와 부정기적으로 시험보는 별시가 있다. 그 외 우수한 인재를 무시험으로 천거하는 천거과, 고위직의 자제들을 위한 음서제 등이 있다. 그러나 고위직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문과(文科)를 거쳐야만 했다.

초시인 생원, 진사 시험에 합격하여야만 본과(문과)를 볼 수 있다. 70대에 생원, 진사시에 합격한 경우도 있었다. 본과에서 최종으로 33명을 선발하는데, 그 중 최고 성적자를 장원급제라 하여 종6품의 품계를 받는다. 이때 33명 합격자 모두에게 관직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요새 수습사원에 해당하는 권지(權知)도 못해본 경우가 허다하다.

조선시대 보통 5세 전후에 공부하기 시작하여 20세 전후에 결혼하고, 합격은 30대 중반이니, 30년 이상 먹고 사는 것을 전적으로 가족에게 의존하게 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험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급제하였다고 하더라도 관직에 나아가지 못한다면 평생의 꿈은 허사이다.

영·정조 선산 출신의 노상추의 경우 어려서부터 문과 공부를 하다가 포기하고, 집안의 전통에 따라 무과 시험을 준비한 지 10년 만인 36세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시험 합격 4년 후에야 관직을 얻어, 66세까지 관직 생활을 하였다. 그의 동생 영중은 13전 14기만에 합격하고, 그리고 8년이 지나서야 관직에 나아갔다. 그는 그나마 관직에 나아갔으니 처지가 나은 편이다.

급제자의 출신지역은 어떠할까? 흔히 하삼도(경상, 전라, 충청)가 인구가 많으니 급제자가 많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최종 합격자는 서울 거주자들이 대부분이다. 그것은 시험에 들어가는 경비 및 정보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요사이 서울 강남 3구의 대학 시험 합격률과 국가고시 합격자 비율이 높게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지방은 서울보다 시험에 대한 정보가 적고, 서울에 가서 시험을 보기 위해 숙식하는 비용까지 생각하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서울 거주의 합격자가 많다고 주눅들 필요는 없다. 서울 거주 합격자들은 누구일까? 그들 대부분은 타 지역 출신의 서울 거주자나 그 후손들이다. 서울 토박이인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지역은 서울의 뒤치다꺼리만 하는 존재는 아니다. 언제나 인재를 재생산할 수 있는 우물과 같은 존재다. 우물은 물을 퍼서 사용하지 않으면 오염된다. 지역이 튼튼해야 국가가 잘 살 수 있다.

서울에 비하여 정보와 금전의 부족을 먼저 생각하기 보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열정과 패기로 세상과 당당히 대결하라. 대학은 인생의 결승점이 아니라 본격적인 출발점이다. 인생의 결승점으로 가는 과정은 자기 자신과의 기나긴 싸움이다. 그 싸움에서 승리해야만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