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 참석 소회
송년회 참석 소회
  • 승인 2018.12.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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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봉조 수필가
서랍을 뒤지다가 결국 빨간 운동화를 신고 나갔다. 빨간 줄의 손목시계, 빨간색 장갑과 목도리를 두른 친구가 있고, 검정 모자에 빨간 깃털을 장식한 친구가 멋을 더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서로 손을 잡고 웃으며, 덕담과 칭찬 일색이다.

친구들의 송년회 풍경이다. 나이가 들수록 청색이나 회색, 검정 등 차분한 색상의 옷을 챙겨 입다보니, 자연히 모임의 분위기도 가라앉는 것 같았다. 하지만 뜻 깊은 송년 모임에서는 밝은 분위기를 연출해보자며, 친구들이 미리 약속을 했다. 붉은 계통의 의상을 한두 가지씩 착용하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벌칙을 받기로 했던 것이다.

송년회는 특정 집단 등에서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노고를 치하하고, 덕담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하는 연말행사다. 나도 몇 군데 송년행사에 참석해보았다. 가족과 친지,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하거나 취미를 함께하는 동호회 등에서였다.

행사의 형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까운 친지들이 모여 오붓하게 음식을 나눠먹기도 하고, 영화를 보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또는 산을 오르며 땀을 흘리거나 취미활동을 하면서 작은 선물을 교환하기도 한다. 단체 카카오톡(Kakao Talk)이나 밴드(Band) 등을 이용해 인사를 주고받는 것도 시간 절약과 경비 절감 차원에서 권장할 만한 일이라 싶다. 2차로 장소를 옮겨 목청을 돋우며 여흥을 즐기는 경우도 있다. 그것도 적당한 범위에서 조절할 수 있다면, 모임의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하다. 더불어 그런 행사들로 인해 침체된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라 해야겠다.

기발하고 익살이 넘치는 건배사도 재미를 더해준다. 자주 사용되는 건배사에는 ‘미사일, 미래를 위해 사랑을 위해 일을 위해. 오바마, 오직 바라고 마음먹은 대로. 당나귀, 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을 위해.’ 등 유머와 희망사항이 함축된 표현들이 많다. 최근에 들었던 건배사 중에는 ‘백두산’이라는 것도 있다. ‘백 살까지 두 발로 산에 가자’는 뜻이 담겨 있다니, 백세시대에 걸맞은 건배사인 것 같아 기억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친구들의 송년 모임에서는 가급적 밝은 이야기만 하기로 했다. 어두운 사회현상을 화제로 올리기 시작하면, 본의 아니게 흥분과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다. 그러다보면 심장이 뛰고, 혈압이 상승하며, 불쾌지수가 올라가는 등 우리들의 밝은 분위기 연출이 빛을 잃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대한 감정은 누구에게나 비슷할 것이다. 연일 사고 소식이 끊이지 않고, 정치인들의 ‘치고 빠지기’나 ‘네 탓 공방’을 일삼는 행위는 불신과 짜증을 더해준다. 각종 병폐들이 전염병처럼 동시에 일어나는 것 같아 가슴이 무겁고 답답하다.

화재나 교통사고 소식도 우리를 슬프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부실시공 등 곳곳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은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고 눈가림에 급급한 국민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권력자의 갑질 같은 수준 낮은 행동들이 우리의 정신을 선진국으로 다가서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아닌가 한다.

송년회 역시 정도를 벗어나면 불미스러운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개인의 사정이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억지로 술을 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로 인해 어떤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 있고, 음주운전으로 이어져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문제를 야기하는 것도 지양할 일이다.

TV에서는 연기대상이나 연예대상, 가요대상 등 일 년을 결산하는 시상식이 이어지고 있다. 분야별로 공로를 인정받은 대상자에게 상을 주어 격려하고, 널리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등 더 바랄 것이 없는 자리인 것 같아 시청자로서도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자신을 뒤돌아보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잘한 일은 추켜 주고, 잘못한 일은 더 잘 할 수 있도록 반성하고 다독이는 것. 연초의 계획은 얼마나 실천했으며, 지키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 정리를 해보는 것도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격려와 칭찬과 덕담으로 수놓아지는 송년행사 같은 훈훈한 분위기가 일 년 내내 이어질 수 있으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울까,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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