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이 겨울날의 행복한 만남
[문화칼럼] 이 겨울날의 행복한 만남
  • 승인 2018.12.2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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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수성아트피아 관장
훗날 멋진 추억으로 간직될 행복한 만남이 있었다. 올 겨울의 이 만남으로 인해 나는 추위 속에서도 가슴 따뜻한 계절을 날 수 있을 것 같다.

#1. 음악과의 만남.

지난주 대구콘서트하우스 ‘월드 오케스트라 시리즈’ 마지막 날 ‘도이치 캄머 필하모닉’의 연주. 흔히들 말하는 ‘인생 공연’이었다. 나는 좋은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멀리 타지까지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처럼 감동 가득한 공연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뉴욕 필, 모스크바 필 등 내한하는 정상급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많이 들었다. 이런 저런 기회에 외국에서도 메이저급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다수 접할 수 있었다. 도이치 캄머 필은 명실상부한 초일류 오케스트라는 아니다. 그런데 이번으로 네 번째 감상한 캄머 필의 연주는 내가 보고 들은 모든 오케스트라 중 단연 최고였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연주력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도이치 캄머 필은 그들만의 스피릿이 있다. 보통 관현악단 연주 시 단원들은 무대에 입장하여 들어온 순서대로 차례로 자리에 앉아 악장과 지휘자를 기다린다. 반면 이들은 전 단원이 들어온 뒤 다함께 관객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한 뒤에야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협연자의 연주가 끝난 뒤 활로 보면대를 두드리며 솔리스트에게 축하인사를 한다. 이에 비해 이들은 악기를 무릎이나 바닥에 놓고 양손으로 힘껏 박수를 치며 협연자를 향한 존경을 표한다. 그것도 얼굴가득 미소를 지으면서--- 지휘자의 요구에도 대단히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그들의 연주모습은 바다의 파도처럼 역동적이다. 작지만 매우 큰 결과를 만들어 내는 이들만의 아름다운 장점들이라고 나는 느낀다. 이것이 기적을 만드는 힘이라고 본다.

왕년의 명지휘자 네메 예르비(Neeme J?rvi)의 아들 파보 예르비(Paavo J?rvi)의 지휘를 보면 마치 영화 007의 제임스 본드 같다. 또는 제로백이 3초에 달하는 고성능 스포츠카처럼 날렵하고 단단하게 보인다. 그가 만들어 내는 캄머 필의 연주는 조아야 할 곳은 물샐틈없이 단단하게, 우아하게 흘러야 할 곳은 너무나 아름답게, 터트려야 하는 부분에서는 응축된 에너지로 포효한다. 관객들의 혼을 빼놓는 음악이다. 나는 이날 연주에서 한마디 소리만으로도 감동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멜로디 없이 정제되고 압축된 단 한음만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증명했다고 본다.

얼음 공주라는 별명의‘힐러리 한(Hilary Hahn)’은 완벽하지만 한편은 가득한 소녀감성으로,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을 고결하고 순수하게 빚어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그리고 44명의 캄머 필 단원들과 파보 예르비가 만들어 내는 슈베르트 교향곡 9번 일명‘그레이트’는 그야말로 ‘그레이트’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음악으로 인해 가슴속 벅차오르는 감동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예의 평소의 예르비답게 슈베르트의 음악을 낱낱이 분석해 완벽히 디스플레이해 놓았다. 적은 숫자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이들은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무대에서 평소 쉽게 접하기 힘든 슈베르트 9번을 들으며 귀에 익숙한 음악이 반드시 박수를 받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연주만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2. 아주 오래된 벗과의 만남

최근 37년 만에 만난 벗들이 있다. 옛날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내가 지휘하던 작은 교회 학생부 성가대원들이었다. 그동안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던 친구도 있었지만, 이번에 몇 몇 이와 정말 긴 세월을 지나 만났다. 지나간 시간들 속에 늘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었기에 가끔씩 생각나던 친구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 오랜만에 만났지만 세월의 긴 간격을 느낄 수 없었다. 다들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고,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얇게 드리워진 시간의 흔적도 곧 지워지는 반가운 벗들이었다.

이들과의 해후는 나에게 특별함으로 다가온다. 당시 참으로 반듯하고, 지혜로운 눈빛이 반짝이던 아이들이 지금은 50대 초중반의 나이에 이르렀다. 이런 긴 시간을 관통하면서 다들 제 몫을 잘해내는 사회인으로 성장했고, 서로들 존재를 잊지 않고 지금껏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부부가 된 친구도 있다. 특히나 모두들 깊은 신앙 속에서 사는 모습이 아름답다. 만나고 헤어지는 인생사에서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되는 일들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 흔치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이들과 함께했던 그 시간이 그런 귀한 순간이었고, 서로 가끔씩이라도 생각해왔다는 것에 감사하다. 그리고 좋은 추억을 공유한 벗들과 가진, 아주 오랜만의 만남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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