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로도, 부모로도 살기 힘들었던 2018년
아이로도, 부모로도 살기 힘들었던 2018년
  • 승인 2018.12.2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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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
우리아이 1등 공부법 저자
연말이 되면 신문이나 방송에서 한 해를 뜨겁게 달군 사건사고를 다루곤 한다. 한 해를 돌아보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다음해를 준비하려는 노력의 일환이 아닌가 한다. 어느 해든 사건 사고 없이 지나는 때가 있을까마는 2018년은 특별히 자식을 가진 부모들에게도 가슴 철렁한 일들이 수없이 일어났던 한 해였다.

학교마다 소풍준비로 한창이던 4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을 상대로 한 초유의 인질극이 벌어졌다. 인질범은 졸업증명서를 떼러왔다며 교내로 들어와 당시 교무실에 있던 학생을 잡아 범행을 저질렀다.

한 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에는 동두천시의 한 어린이집 통학차량에서 네 살 아이가 폭염 속에 일곱 시간 넘게 방치돼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매년 일어나는 이 같은 사고가 올해도 역시 반복되는 것에 전국의 학부모들은 분노했고, 학부모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정부가 연말까지 약 4만대에 이르는 어린이집 통학차량에 슬리핑 차일드 체크(잠자는 아이 확인 장치)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선진국에는 벌써 도입되어 있는 당연한 안전장치를 제때 마련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는 끓어오르는 한반도만큼이나 학부모들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이어 같은 7월에 서울 화곡동의 한 어린이집에서 11개월 된 영아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국립과학수사 연구원이 밝힌 영아의 사망원인은 비구폐쇄성 질식사(코와 입이 막혀 발생한 질식사)였다. 이외에도 하루가 멀다하고 아동학대사건이 계속됐다.

“도대체 어디에 아이를 맡기란 말이냐!”는 학부모의 원성은 높아져 갔지만 정부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땜질식 처방으로 관련자를 처벌하고 넘어갔다. 급기야 가을에는 비리 어린이집 명단을 공개하며 문제가 있는 어린이집을 발본색원할 듯 보였지만 갈등만 키운 채 다가올 봄에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야할 학부모를 절망시켰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엄마들이 계속되는 공포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즈음 여성가족부가 ‘2018년 청소년 통계’를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 자살률은 2016년 기준 10만 명당 7.8명으로 10년째 자살이 청소년 사망원인의 1위로 꼽혔다. 이는 교통사고 사망률(3.8명)의 2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죽고 싶은 이유’로는 학교성적이 41.9%로 압도적으로 높았고, 가족 간 갈등(24.5%)이 그 뒤를 이었다. 매년 꽃 같은 아이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해도 문제 많은 입시제도의 개선은 요원해만 보인다.

11월에는 인천에 사는 10대들이 또래 중학생을 집단폭행한 뒤 15층 아파트 옥상에서 추락해 숨지게 했다. 피의자 중 한 명은 피해자의 패딩점퍼를 입고 법원에 출석해 보는 이들을 경악시켰다. 왕따 피해학생에게 끊임없는 수치심을 가해 스스로 사망하게 하고, 그 학생에게서 빼앗을 점퍼를 입고 검찰에 출석한 아이들의 행동에 ‘소년법 개정’에 관한 여론이 다시 한 번 들끓었다.

다가오는 연말 준비로 분주했던 지난주에는 강릉의 한 펜션에서 수능을 끝낸 고등학생 10명 중 3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하고 7명이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웃으며 나갔던 아이가 주검으로 돌아온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 앞에서, 대부분의 부모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뻔한 인재(人災), 뻔한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언제까지 계속 돼야 한단 말인가?

한 해에 일어난 사건 사고를 돌아보니 ‘이 나라에서는 한 아이가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새삼 깨닫는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역시 뉴스에 나오는 경악할만한 사건을 접할 때마다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절망했으며, 희생된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닌 것은 단지 운이 좋아서였을 뿐이라는 사실에 좌절감과 서글픔을 동시에 느껴야했던 한 해였다.

아이들의 희생에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뉴스에 거론된, 혹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사회의 구석에서 말없이 희생된 모든 아이들에게 말로는 다 못할 죄책감을 느낀다.

견딜 수 없는 죄스러움을 견뎌야했던 한 해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부디 2019년은 올해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사회가 만들어져서 이유 없는 아이들의 희생이 멈추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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