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종교배 도시’ 대구 바꾸는 천재일우의 기회 삼아야
‘동종교배 도시’ 대구 바꾸는 천재일우의 기회 삼아야
  • 이대영
  • 승인 2019.01.0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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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3대 도시’ 면모로 유지하던 대구
2000년 이후 GRDP·청렴지수 최하위
‘순환·경쟁·상호비판 없다’ 진단 받고
‘성장이 멈춘 절망의 도시’ 오명 얻어
반성·행동 따르는 2019년으로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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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영 소장이 청라언덕에서 에덴동산을 상상하며 그린 그림.
 

이대영의 신 대구 택리지 (1) 새해의 의미

2019년 첫날은 화요일부터 시작하며, 2018년 한해를 결산하고, 2020년을 준비하는 한해로 보인다. 국내 예정되는 이벤트로는 4월 3일 보궐선거, 11월 14일에 2020년 대학수능시험이 짜여져 있으며, 국외엔 가까운 일본에서 4월 30일 천황 아키히토(明仁)가 퇴위하고, 5월 1일 천황 나루히토(德人)가 즉위, 10월 5일에 매년과 같이 노벨수상자가 연이어 발표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구는 팔공산과 금호강이 거대한 금호주변의 질펀한 백리사구(百里沙丘)를 이뤄 공룡이 뛰놀았던 곳이며, 닭이 울자 아침이 오고 날이 밝아온다(鷄鳴招朝)는 믿음에서 닭벌(鷄野)을 당시 방언 그대로 달구벌(達丘伐)이라고 했다. 올해는 경덕왕16(757)년에 달구화현을 대구현(大丘縣)으로 부른지 1천262주년, 세종1(1419)년 대구현을 대구군(大丘郡)으로 승격한 600주년, 세종30(1480)년 전국 최초 사창(社倉)를 설치해 복지제도를 시범운영한 지 571주년, 세조12(1460)년 군사적 요충지로 도호부 설치 559주년, 선조34(1601)년 안동(安東)에 있었던 경상감영(慶尙監營)을 이전한 지 408주년이 된다.

◇새해가 대구에 던지는 역사적 과제

2019년 새해가 우리 대구지역에 던져주고 있는 진의(眞意)는 과거 역사의 기념이 아니라, 미래 개척을 위해서 계기를 마련하고 새롭게 디자인하라는 ‘이천(2000)년 만에 한(1) 번 오는 큰 대구(9)의 한해’라는 의미다. 2000년까지 대구는 우리나라 근대산업화의 산실, 새마을운동의 산실, 대외무역의 역군으로 3대도시 면모를 유지해왔다. 이후 수많은 분야에서 경고음이 올렸다. GRDP, 청렴지수, 청년취업비율 등에 최하위를 유지해 왔다. 그럼에도 ‘우리가 남이가’ 혹은 ‘못 먹어도 고’하는 정치논리에 매몰되어 왔다.

지난 2006년 3월호 월간조선은 “성장이 멈춘 절망의 도시 대구”를 해부했고, 주요원인으로 순환, 경쟁과 상호비판이 없는‘동종교배의 도시(city of in-&-in breeding)’로 진단했다. 그럼에도 이에 대해 누구 한 사람도 아무런 반성과 행동은 일체 없었다. 생각하면 바로 올해가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다.

BC 8천년경 세워진 인류 최초도시 에리코(Jericho)가 물이 좋아서 그렇게 번창했다가 물이 나빠지자 사람도 물산도 빠져나가고 서서히 망하고 있었다. 예지자 엘리샤(Elisha, BC848~797)에게 에리코 지역주민들이 기사회생의 처방을 요구하자 ‘소금 한 사발(a bowl of salt)’을 원천에 던져 치유를 했다. 당시 처방전의 소금(salt)을 풀이하면 i) 봉사(Service), ii) 솔선수범(Action), iii) 이웃사랑(Love) 그리고 iv) 용서 혹은 관용(Tolerance)하라는 상징이었다.

오늘날 대구의 각종 ‘나쁜 물(bad water)’현상을 치유할 처방으로 먼저 i) 리베라 대구(Libera Taegu)라는 자성하는 기도문을, 다음으로 대구처방용 소금을 모색해 ii) 건전한 정신과 위기감에서 생산적인 결실(Sound Sprite), iii) 깊은 샘에서 흐르는 물이(Aqua), iv) 미래논리가 있겠나니(Logic)! v) 대구랩소디를 다 함께 부릅시다(Together All)로 살펴보고자 한다.

◇리베라 대구(Libera Taegu, 기도문)!

△능금 꽃 피는 내 고향 대구, 질펀한 백리복지

1억4천만 년 전 달구벌 금호는 백두산 천지의 13배나 되는 하늘이 비치는 거대한 거울이었다. 사람이 살면서는 달구벌에 닭이 울면 하늘에 동튼다고 계명작여(鷄鳴作黎)라고 했다. 이곳을 닭벌(달구벌) 혹은 질펀한 백리길 모래벌판에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언덕이라고 해서 중국고전 산해경(山海經, AD 265~429)에서는 청구(靑丘)라고 했다. 꼬리가 9개인 여우가 살았다는 신화가 전해지고 있다.

서라벌의 국운에 대해 고민에 빠졌던 덕만(德曼)공주는 이곳 부인사(符仁寺)를 찾았다. 불전에 삼천배례를 올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동년배 자장율사의 당부가 회상되었다. 머리를 스치는 말 “새로운 천년사직을 펼치자(新羅千年)”를 저고리 끈에다가 4글자를 한 자씩 자수를 놓았다. 서라벌(徐羅伐)로 환궁한 뒤 632년에서 선덕여왕(재위기간, AD 632~647)으로 즉위하고, 삼한일통(三韓一統)의 꿈을 하나씩 다져나갔다. 삼국통일을 성취한 신문왕(즉위680년)은 국토의 중앙에 있는 이곳의 지세가 장풍득수(藏風得水)와 전략상 요새임을 간파했다. 689년에 이곳으로 천도를 도모했으나 경주귀족의 반대에 부딪치고 말았다.

△군사적 요새란 이유로 행정은 변방으로 전락

한편 신라는 가야·백제 정벌에 쏟은 힘의 20%가량을 대구 설득과 대우에 쏟은 것 같다. 1956년 비산동 37호분에서 출토된 금동왕관은 국왕(干, khan)으로 극진히 예우했음을 알 수 있으며, 예우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안주했음을 대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927년 태조 왕건(王建, 877~943)이 친위 기마병 5천명과 경주를 치고 돌아오는 견훤의 군사를 복병으로 기습하고자 했으나, 역공을 당해 팔공산 지묘동(棟藪)에서 3중으로 포위되었고, “독안에 든 쥐 꼴(盆內之鼠)”의 절제절명의 위기를 당면했다. 그는 제왕과제로 해결해야 했다. “황금매미가 허물을 벗어던지며 사지를 벗어난다(金蟬奪殼)”는 계략으로 구사일생 사지를 탈주해서 송악으로 귀환했다. 이렇게 봉변을 당했던 이곳 대구를 역반의 시골(逆反之鄕)로 여기고 성주현(星州縣)에 속현시켰다. 1460년 세조12년에 군사적 요새로 도호부를 설치했지만, 선조34년(1601) 경상도 감영이 이곳에 옮겨오기까지 대구는 정치·행정의 변방도시였다.

변법개화파가 일본공사관과 내통해 1884년 갑신정변으로 정권을 잡았다. 이때를 틈타 일본제국군은 대구달성공원에 주둔하면서 청일전쟁에 참전해 승리했다. 승전기념으로 일본은 1904년 달성을 일본제국군의 성역화 장소로 구상하고, 1905년에는 황태신궁을 건립하고, 3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공원(公園)이란 이름으로 신성지역으로 만들었다. 황국일본의 신하백성(皇國臣民化)의 복종심을 심어주고자 신사참배(神社參拜)를 이곳에서 시범사업으로 시작해서 한반도 전역으로 전파했다. 1917년 미쓰비시그룹(三菱財閥)의 조선방직을 중심으로 제1공업단지를 조성해 만주사변과 대륙침략전쟁의 병참기지화 시범사업을 이곳에서 점화했다.

외지인들에 의해 “대구는 일제병참기지산업을 무슨 놈의 꿀단지라고 껴안고 빨아 먹으면서 오늘까지 안주하고 있나”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팔달교 위를 달리는 제3호 지상철의 조형물을 섬유도시대구를 상징하는 베틀 북(weaver‘s shuttle)을 형상화해서 설치했다. 그 상징물을 볼 때마다 BC 2066년경 욥(Job, BC2100~2000)이 “나의 나날이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희망 없이 보내는구나!” 했던 자성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대구에 시사(示唆)하는 바는 “베틀 북처럼 분주했지만 정작 미래희망은 만들지 않았구나”라는 만시지탄이다.
 

 

이대영소장
 

이대영(李大英) 미래연구소장 약력
-현 코리아미래연구소장(대구), ‘노벨상을 갖고 놀자’ 집필 중
- 2005~2015 한국자치학회 공공정책연구원(서울), 공공정책 자치편집위원 및 명예기자
- 2007~2009 대구시혁신기획단 직원대표위원
- 2001~2006 대구광역시청공무원노동조합(대구), 달구벌정책연구소장/달구벌문화연구소장
- 1980~1881 캘리포니아 웨스턴 대학(샌디에고), 행동과학 석·박과정(이수)
- 논문 : 인감증명제도 폐지 제안 등 100여 편의 연구논문발표
- 저서 : ‘한국아 놀자, 독도야 함께 놀자’, ‘능금 꽃 피는 대구’ 등 1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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