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여행으로 일본 다시 보기
오키나와 여행으로 일본 다시 보기
  • 승인 2019.01.03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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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선 대구교육대학교 대학원 아동문학교육 전공
일본인들이 한국영화 ‘겨울연가’에서 ‘배용준’의 매력에 이끌려 한류스타 신드롬을 앓았다. 그처럼 일본 오키나와 토카시키섬에 살던 ‘하이타니 겐지로’의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내가 만난 아이들’ 책을 읽으며 나는 그의 교육애와 교수법을 따르고 싶어했고 그를 순수한 교육 동지애로 가슴에 품고 오키나와를 따스하게 생각했다.

최근에 오키나와현 이토만시에 있는 평화기념(祈念)공원을 다녀오면서 더 가슴 따스해지는 역사 속 오키나와인들을 만났다. 교통이 불편해 차 없이는 못 다니는 곳이라 ‘렌트 카’로 평화기념 공원을 찾아가 한국인 위령탑 앞에 섰을 때 말짱하던 하늘에서 여우비가 흩뿌렸다. 여우비를 맞으며 우리 동포들을 위해 묵념을 올렸다. 억울하게 죽어간 그들의 원혼이 하늘에서 함께 하는 듯 했다. 1945년 아시아 태평양 전쟁 때 오키나와 전투에 강제 징용되어가 전사한 조선인 병사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돌무덤 같은 ‘한국인 위령탑!’ 그 옆에 노산 이은상의 ‘영령들께 바치는 노래’비가 세워져 그들의 원혼을 가만 가만 쓰다듬고 있는 듯 했다. <바라보면 조국은 원한의 먹구름/첩첩이 쌓이고 가린 천리만리/ 역사의 흙탕물 폭포같이 쏟아질 적에/ 양떼처럼 희생의 제물이 되어(20줄 중략)/ 산천이 울리게 승리의 합창 부르며/ 돌아가 그 품에 안기시라/그 품에 안겨 겨레의 힘이 되시라. 1975년 8월> 이국땅에서 일제의 총알받이로 죽어간 우리의 넋들을 가슴에 무겁게 안고 발길을 돌려 ‘한의 비’를 찾았다. ‘한의 비’는 오키나와인들이 돈을 모아 조선에서 강제 징용된 군인과 위안부의 희생을 추모하기 위해 전몰자 1만여 명의 이름을 모두 기록으로 만들어 새겨놓은 비석이었다. 이들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위안부 문제에 죄의식을 못 느끼며 사무라이 정신으로 일본을 키워가는 그들의 후손인가? 아니다. 이들은 1등 신민인 본토 일본인과 같은 대접을 못 받고 ‘리키징’이라며 야만인 취급을 받고 조선인과 함께 일반 식당 출입도 금지당하며 차별받던 오키나와인들이었다. 이들은 1945년 4월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하면 미군에게 붙잡혀 탱크로 깔아뭉개지고 성폭행 당한 후 잔인하게 죽인다고 선전하는 일본정부에 의해 자살을 설득당해 죽어갔다. 시무구가마로 피신했던 천 명 주민 중에 영어가 가능했던 두 사람이 미군에게 살려줄 것을 약속 받아 그곳의 천 명만 모두 살아남았단다. 그러고보면 이들 오키나와인들은 1872년 메이지 시대 오키나와에 류큐빈이 설치되면서부터 주권을 상실했고 우리 조선인들처럼 일본제국주의의 피해자가 되었으니 서로 동질감에서 더 친근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 오키나와에 ‘한의 비’를 세우면서 한국의 경북 영양에도 동시에 세워주었을 것이다. 이렇게 일본의 어느 한 구석에는 양심적인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니 일본인이라고 무조건 미워할 수만 없을 것 같다. 오키나와 향토마을에 들렀을 때 큰 나무 옆에 소원을 적어 매달아둔 흰 쪽지들을 보았다. 저 쪽지들 중에도 ‘독도를 우리 일본 땅이라고 우기는 도둑놈 심보를 버리고 조선인을 위안부로 괴롭혔던 과거 일도 진심으로 용서를 빌어 국위를 되찾고 싶다’는 염원의 쪽지가 쓰여 있을 것만 같았다.

날이 저물자 반짝이는 불빛으로 현란한 국제 거리를 걸으며 민요를 라이브로 연주 한다는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저녁을 먹으며 오키나와 전통 민요를 부르는 여인의 구성진 노래를 들었다. 옆자리의 일본인에게 무슨 뜻의 노래인가 물었는데 그들도 우리의 방언처럼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벽에 걸린 옛 오키나와인을 그린 그림과 전통악기 연주와 여인의 노래 음율은 오키나와인들의 슬픔과 한을 고스란히 애잔하게 전해주었다.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을 안다는 옆자리의 일본인은 ‘당신네는 우리 일본인을 미워하지 않는가?’고 물어왔다. 그래서 ‘당신네들 가운데, 잘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미워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잘못한 행동에 대해 사죄하고 위령탑을 세워주는 이들은 용서한다’ 고 했다.

이런 전통이 있는 오키나와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어 잠자리를 고시원 같은 게스트 하우스로 정했다. 침대가 이층으로 놓여 있고 화장실과 샤워실도 방 밖의 긴 복도를 지나야 했다. 좀 불편했지만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최소 공간을 최대로 활용하는 지혜가 엿보였다. ‘콩나물을 다듬으면서/나란히 사는 법을 배웠다/줄이고 좁혀서 같이 사는 법/물마시고 고개 숙여/맑게 사는 법’ 이향아의 시가 생각났다. 아침을 먹으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고양이를 안은 일본인 노부부를 만났다. 고양이가 귀엽다고 연신 쓰담으며 웃는 그들을 보다가 문득 일본인들은 고양이의 습성과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고양이를 유독 좋아해서 고양이 전문 서적만 파는 상점도 있으니 말이다. 아베 정권이 교과서에서 위안부 이야기를 삭제하려하고 독도에 대해 탐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 우리의 분노를 싸고 있지만, 오키나와인의 양심에 감사하는 마음과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조용하고 깨끗하게 생활하려는 개인의 기본 생활 습성은 배워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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