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인아웃] 우리가 춤추어선 안 되는 까닭
[백정우의 줌인아웃] 우리가 춤추어선 안 되는 까닭
  • 백정우
  • 승인 2019.01.0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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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도의날
 

 

백정우의 줌 인 아웃- 국가부도의 날 

‘경제학 원론’은 이렇게 시작한다. ‘경제학이란 이기적인 인간이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최대한의 이득을 얻는 방법을 모색하는 학문’.

1997년 겨울, 사상 초유의 국가부도사태로 인한 IMF구제금융 이후로 21년이 흘렀다. 영화는 언제나 뒤늦게 도착한다던 고다르의 언술처럼 이 시절을 그린 첫 번째 영화 ‘국가부도의 날’ 또한 너무 늦게 등장했다. 경제학과 금융이론까지 동원하며 정치적 논란을 피하려 애쓴 흔적이 역력한 영화가 얘기하는 것은 단순하다. 방만한 경영을 해온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와 이를 방기한 정부와 경제 관료의 관리감독 소홀과 공직자 의식 실종이 미증유의 사태를 초래한 주범이라는 것. 무거운 드라마에 활력과 재미를 가미하는 건 아비규환을 딛고 신분상승을 이룬 몇몇 사람의 에피소드다. 때문에 경제와 금융에 대해 문외한일지라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고 영화가 끝났을 때면, 한 시대를 관통한 금융투기의 역사를 읽어낸 쾌감을 얻게 될 터. 그런데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국가부도의 날’이 단순히 부도덕한 집단에 대해 고발하고 금융위기의 근원을 추적하는데서 그쳤더라면, 굳이 이 글을 쓸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일찍이 김우창 선생은 “호상(好喪)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사람이 죽었는데 어찌 좋은 상이라 할 수 있는가”라 말했다. 천수를 누리고 돌아가셨을지언정 한 인간의 죽음 앞에서 좋다는 표현은 삼가라는 뜻일 터.

경제학의 전제조건은 ‘이기적 인간’에 있다. 인간의 이기심이 경제적 행위를 이루는 근간이라고 보는 것이다. 영화 초반, 금융위기를 감지한 종금사 팀장 유아인은 투자자를 모아 위기를 기회로 삼을 아이템에 관해 설명한다. 달러 매입을 통해 환차익을 노리는 작전. 불법도 탈법도 아니다. 아수라장인 시장상황은 발 빠르고 눈 좋은 분석가에게 최적의 먹잇감이 된다. 그 해 겨울도 그랬다고 영화는 증언한다. 위기를 자초하고도 모자라 국민을 기만하고 은폐하려는 정권의 도덕성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 역시 별 수 없는 이기적 인간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누군가 금융기관의 부실과 부도덕을 파헤쳐 국가부도를 예견하고 사표를 던졌다 해도, 그의 예측이 들어맞음으로 인해 큰 이익을 본 집단(정확히 3명은 대박을 맞았다)이 있다면 박수를 치고 환호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적 재미와 다른 도덕적 문제를 피해가는 감독의 영민한 선택은(아담 맥케이 감독의 ‘빅쇼트’에서 단초를 얻었을 테지만) 유아인이 투자자에게 던지는 경구로 마무리된다. “좋아하진 마.”

탐욕스런 인간이 득실대는 자본주의 시장일지라도, 그들이 저지른 잘못에 비하면 나의 행위가 대수롭지 않아보일지 몰라도, 설사 그 죄상을 폭로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일지라도, 마지막까지 인간실종만은 피해야한다는 것, 영화가 세상의 방부제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단순 고발에 그치지 않고, 주요행위자에 대한 단죄에 집중하기보다는 무능하고 비겁했던 한 시대를 통찰하며 인간 내면에 똬리를 튼 탐욕의 실체를 폭로하는 드라마틱한 보고서 ‘국가부도의 날’.
 

 

백정우(영화평론가·한국능률협회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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