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북, 인종차별 없는 세상 위해…그는 연주한다
그린북, 인종차별 없는 세상 위해…그는 연주한다
  • 배수경
  • 승인 2019.01.03 21: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흑인과 백인, 두 남자의 유쾌한 우정 ‘그린북’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
다혈질 운전기사 토니 립
8주간 투어 이야기 그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
유머 잘 버무린 휴먼 드라마
골든 글로브 5개 부문 후보
그린북
 

폴 매카트니와 스티비 원더가 부른 ‘애보니 앤 아이보리(Evony&Ivory)’는 흑백의 건반이 모여 하모니를 이루듯이 흑백의 인종화합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미국에서 법적으로 흑인 노예해방이 선언된 것은 1865년, 그렇지만 오랜 세월동안 흑인을 향한 편견과 차별은 계속되어 왔다. 영화 ‘그린북’은 비록 노예제도는 사라졌지만 ‘백인만 출입할 수 있음’, ‘흑인과 개는 사절’이라는 문구를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차별이 당연시 되던 196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교양과 우아함을 갖춘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와 말보다는 주먹이 먼저 나가는 다혈질 운전기사 토니 립(본명은 토니 발레롱가지만 ‘떠버리’토니로 불리는) 두 주인공이 8주간의 콘서트 투어를 떠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피부색과 콘서트가 열리는 지역에 있다. 백악관에서도 초청 공연을 할 정도로 이름난 피아니스트인 돈 셜리는 흑인이고 콘서트 장소는 흑백의 차별이 당연시 여겨지던 켄터키, 앨라배마 등 미국 남부지역. 재즈 가수 냇 킹 콜이 백인전용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다 무대 위에서 구타를 당하기도 했던 지역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이 남부로 떠나기 전 음반사 직원은 한권의 책을 토니에게 건네준다. 이 책이 바로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그린북’이다. 그린북은 흑인 여행자들이 이용가능한 숙박시설, 식당, 주유소 등 편의시설 정보가 담긴 일종의 여행 안내서이다. 그들의 여정이 남쪽으로 향할수록 셜리박사를 향한 차별의 강도는 심해진다.

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은 백인들은 무대 위 셜리 박사의 음악에 기립박수를 치고 열광을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가 무대 아래로 내려오는 순간 그는 천재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피부색으로 규정된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공연은 할 수 있지만 그 곳에서 식사는 할 수 없다. 집안에 있는 백인전용 화장실 역시 쓸 수가 없고 마음에 드는 양복도 입어볼 수가 없다. 남부의 경찰은 괜한 트집을 잡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는 늘 조용히 그 상황을 견뎌낸다.

켄터키에서 먹는 오리지널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을 둘러싼 에피소드는 재미가 있지만 공연이 끝난 후 어느 저택에서 그에게 대접하는 프라이드 치킨은 씁쓸하다. 흑인이라면 당연히 프라이드 치킨을 좋아할 것이라는 것 역시 편견이다.

이탈리아계 이민자인 토니 발레롱가도 피부색으로는 백인이지만 그 역시 미국사회에서는 주류가 아니긴 마찬가지다.

“나는 평생 그런 취급을 당해왔는데 당신은 하루도 못참아?”

멸시를 묵묵히 견디는 셜리 박사를 토니는 이해 못하지만 그는 편견에 맞서는 방법으로 폭력이 아닌 품위를 선택한다. 그것이 그가 몇 배의 수익을 더 올릴 수 있는 북부에서의 공연을 마다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남부투어를 고집한 이유이기도 하다.

‘덤 앤 더머’,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등 주로 코미디 영화를 연출해 온 피터 패럴리 감독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에 자신의 강점인 유머를 잘 버무려 휴먼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2시간이 넘는 영화가 지루하지 않은 것은 배우들의 열연 덕이 크다. 토니 역의 비고 모텐슨은 ‘반지의 제왕’의 전사 아라곤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이탈리아 이민자로 변신을 했다. ‘문라이트’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2017)을 수상한 마허샬라 알리도 흑인과 백인사회 어느 곳에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는 외로운 셜리 박사의 모습을 잘 표현해내고 있다. 두 배우의 케미도 좋다.

영화 초반 흑인 배관공이 마시던 컵을 찜찜하게 바라보다 결국은 쓰레기통에 버리던 토니가 흑인 피아니스트의 운전기사가 되고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훈훈하다. 영화를 더 감동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데 있다. 각본을 쓴 닉 발레롱가는 토니 발레롱가의 아들이다. 실제 두 사람의 우정은 50년 가까이 계속 되었다.

영화 ‘그린북’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1963년 마틴 루서 킹이 꿈꾸던 세상은 과연 왔는지, 지금의 우리는 과연 피부색, 국적, 성별에 따른 편견없이 사람을 대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오는 6일 열릴 제 76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 각본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등 무려 5개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린 ‘그린북’은 9일 개봉예정이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