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만드는 포토그래퍼, 자연에 생명을 입히다
빛을 만드는 포토그래퍼, 자연에 생명을 입히다
  • 황인옥
  • 승인 2019.01.03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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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展…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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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개인전이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2월 24일까지 열린다.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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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작 ‘생명나무’.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제공

몽환적 분위기의 나무·바다…
흡사 디지털 합성작품 같지만
장노출 기법 입힌 아날로그사진
촬영 전 원하는 대상·구도 잡아
에너지 느끼게 되는 감응의 순간
직접 플래시 쏘아올려 發光 창조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Multi use)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다. 말 그대로 하나의 콘텐츠가 여러 문화상품을 파생시킨다는 뜻이다. 높은 확장성과 관계되는 이 신조어는 21세기에 급부상하는 새로운 트렌드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원 소스’. 탄탄한 원 소스의 보유 유무에 따라 멀티 유즈로의 확장 가능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미술에서도 원 소스는 강렬한 힘을 발휘한다. 명징한 원 소스를 보유한 작가일수록 작업의 깊이와 넓이에서 차별화될 수 있다. 미술에서 원 소스는 주제나 메시지의 뿌리, 시각적 구현의 토대가 되는 ‘원형질’로 치환할 수 있다. 작가 이정록의 작품에서 유달리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Multi use)가 강하게 떠올랐다면 주관적일까?

◇ ‘빛’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세상

이정록 작가의 원 소스는 ‘빛’이다. 작품은 그야말로 빛의 향연이다. 영롱한 빛들이 겨울나무 가지에 나뭇잎처럼 매달려 반짝이는가 하면, 유럽의 고풍스런 도심 위, 무성한 수풀 속, 푸른 바다 위, 척박한 바위산골, 역사적 유적들에도 어김없이 피어오른다.

몽환적인 빛의 향연 때문일까? 흡사 작품은 디지털 합성처럼 보인다. 한 눈에 인지되는 간명한 대상을 몽환적이면서도 빨려들 듯 한 압도감으로 빛이 감싼 형상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물기 때문이다. 실제 존재하는 대상을 이처럼 몽환적인 압도감으로 담아내는 것이 아날로그에서 가능할까? 그가 “순수 아날로그 작품”이라고 선을 그었다. “일종의 퍼포먼스의 결과죠.”

작업은 여러 단계를 거치는데, 핵심 기법은 장노출이다. 장노출은 카메라의 셔터막을 개폐하는 방식를 취한다. 카메라 셔터가 열리는 순간부터 닫히는 순간까지 일정한 시간을 두고 촬영되는 것. 촬영에 이용되는 카메라는 4x5인치 사이즈 필름을 사용하는 대형카메라다.

촬영 이전에 촬영 대상부터 정한다. 이때 촬영 대상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공간이 가진 느낌이다. 일단 대상이 정해지면 카메라 셔터막에 검은 천을 뒤집어 씌우고 셋팅을 한다. 셔터막을 개막에 검은 천을 걷어내는 순간, 촬영이 시작된다. 촬영의 시작은 하루 중 작가가 원하는 색감이 되는 시점이다. 이 시점에 카메라 셔터막을 올린다. 그리고는 해가 질 때까지 검은 천으로 셔터막을 덮고 진짜 암흑이 되는 밤을 기다린다. 밤이 되면 천을 걷어낸다. 이시기부터 작가는 또 다른 행위자로 변신한다. 바로 퍼포먼서다.

퍼포먼서로서 그는 생명나무에 플래시로 빛을 쏘아올린다. 무수히 많은 빛들이 그의 행위에 의해 나무에 쏘아 올려진다. 플래시는 촬영대상을 향해 빛을 발광하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작가가 직접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서 렌즈를 향해 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암흑같은 밤에 빛을 가지고 춤을 추는 행위와 흡사하다. 플래시는 비추는 과정에 나무줄기에 서치라이트를 추가로 비추어 나무를 희게 만든다. 이 장치가 더해지면서 몽환성은 최대치가 된다.

“제가 수없이 쏘아올린 수많은 플래쉬 불빛들은 사진에서 정지된 빛들의 향연으로 드러나게 되죠.”

◇ ‘빛’은 현실세계와 근원세계의 매개체

사진은 빛의 예술이다. 어떤 장르보다 빛이 중요하다. 그렇더라도 작가 스스로 빛을 만드는 창조자를 자처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그는 기꺼이 빛을 창조하는데 열정을 불사른다. 왜 빛이었을까? 작가는 빛이어야 했던 필연적 이유로 마이클 뉴턴(Newton, Michael)의 시 ‘영혼들의 여행’을 언급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숨겨진 세상, 영혼들이 살고 있는 곳,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여행길에 안내하는 빛, 의식적인 기억에서는 사라졌으나 무아의 경지에서 보이는 빛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작가는 “‘나비’연작에서 나비가 현실세계와 근원적 세계를 연결해주는 매개적 존재”라는 말도 덧붙였다. 결국 그는 현실 이전 세계와 현실세계, 그리고 다시 돌아가야 할 궁극의 서로 세계가 상응한다는 것을 빛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작가는 한글의 모음이나 자음 또는 네모나 동그라미 등의 도상기호들을 네온싸인으로 제작해 대상에 설치하는가 하면 나무나 풍경, 역사적 장소 등에 빛을 쏘아 올리는 작업으로도 확장했다. ‘생명나무’, ‘신화적 풍경’, ‘사적 장소’, ‘나비’ 연작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빛을 쏘아 집적하는 작업에서 관건은 ‘얼마나 어떤 형태로 빛을 쏘느냐’가 될 것. 그가 ‘기(氣·에너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작가의 원 소스가 물성으로서는 ‘빛’이었다면, 개념적으로는 ‘기’라는 논리였다.

“플래시를 촬영 대상에 쏠 때 무의식일 것 같지만 그 행위 이전에 마음을 집중하고 대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느끼는, 일종의 감응을 먼저 하게 되죠. 그 이후에 그 감응의 기운을 따라 빛을 쏘게 되죠.” 대상의 기를 느끼는 감응은 작가 스스로 명상과 같은 정화 작용이 선행돼야 가능하다. 작가 이전에 명상가가 돼야 하는 것.

한 눈에 인지되는 간명한 형상, 몽실거리는 풍부한 서정. 이정록 작품 앞에 서면 질문이 몽실몽실거린다. 빛과 기(氣)로부터 시작된 작품의 무한 확장성에 사진가, 명상가, 퍼포먼서까지 작가 역할의 무한확장까지. 확장성이야말로 그의 작품이 질문을 부르는 힘의 원천이자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Multi use)는 아닐런지? 전시는 2월 24일까지 아트스페이스 루모스(대구 남구 이천로)에서. 053-766-3570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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