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간(離間)의 격(格)
이간(離間)의 격(格)
  • 승인 2019.01.0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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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새해다. 벽두(劈頭)부터 국내외가 소란스럽다. 미국은 셧다운(shutdown)사태로 출구를 찾느라, 국내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기초의원들까지 물의를 일으켜 해결하느라 부산스럽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의혹을 제기한 김태우 수사관이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이틀에 걸쳐 조사받은 시간을 합하면 약 23시간이 넘는다. 할 말도, 물을 말도 많았나 보다. 청와대는 12월 19일 김 수사관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고, 바로 다음날 자유한국당이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조국 민정수석,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이인걸 전 특감반장을 직권남용 및 직무유기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조사를 마치고 나온 그는 “환경부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언론 보도를 봤다”며 “제가 공표했던 내용에 걸맞은 결과가 나오는 듯해 진실이 밝혀지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국민들은 진실을 원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왜곡되고 호도(糊塗)되어 온 진실을 마주한 국민들은 정치권의 진실을 신뢰하지 않는다. 얼마나 진실에 목말라 있는지, 그들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태안화력 발전소의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故김용균의 죽음은 전기를 생산하는 증기터빈(turbine)을 끓이기 위한 석탄을 이동하는 컨베이어 벨트가 원인이었지만, 더 심각한 것은 사회적 무관심이다. 유사한 죽음이 열두 번째라고 알려져 있다. 그들의 죽음은 왜 베일에 가려질 수밖에 없었을까. 진실이었음에도 말이다. 진실의 무게와 가치는 이렇듯 다르다. 정치권의 민중간의 진실, 그 무게감을 감히 비교나 할 수 있을까.

유치원 3법이 1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채, 결국 신속처리안(fast track)으로 넘어갔다. 말이 좋아 패스트지, 최장 330일에 법안이 통과되고도 1년간의 유예기간을 가진다. 사립학교법보다 처벌수위도 낮은데다 결과적으로 2년이 되어야 시행된다. 김태우 수사관을 두고 청와대와 한국당의 신속한 고발에 비하면, 초유의 유치원 사태에 대한 대응치고는 미온적이다.

그뿐인가. 기초의원의 사례를 살펴보자. 경북 예천군의회 9명과 사무국 직원 5명이 7박 10일간 떠난 해외 연수에서 현지가이드를 폭행하고 여성이 근무하는 술집을 요구하는 추태를 부렸다. 미국동부와 캐나다 일대의 연수라는 미명하에 관광에 쓴 비용으로 예천 군민들의 세금 6천200만원이 쓰였다. 물론 일정에 지방의회 방문이라는 구색은 갖추긴 했지만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이미 호텔 내에서의 고성방가로 2차례 경고를 받은 바도 있다고 한다. 예천군 의회는 말싸움 도중 손사래를 치다 잘못 맞았다며 6천달러(한화 약 675만원)의 합의금도 줬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블랙박스 영상이 공개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오자 이형식 예천군의회 의장은 폭행을 인정하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어 박종철 의원은 부의장직에서 물러났다. 손사래와 폭행조차 구분이 되지 않는 이들이 군의원들이란 말인가. 아직도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시도가 아쉽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

대통령을 비롯해서 국회의원과 기초의원들은 국민들을 대표하는 이들이다. 국민들의 의사에 따라 선출되어서 공무를 수행하는 자들이다. 그것이 전부여야 한다. 그 외에 주어지지 않은 절대 권력을 탐해서는 안 된다. 분수를 알아야 한다. 국민들도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들의 잘못된 관행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감히 국민 위에 군림하지 못하도록 그들의 위치를 일깨워주어야 한다. 잘하는 부분이 있으면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하고, 잘못하는 부분에 있어서 응징(膺懲)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간(離間)은 서로를 헐뜯게 하여 멀어지게 하는 일이다. 진실을 가린 채, 서로를 멀어지게 하는 것은 이간질이라고 낮잡아 부르기도 한다. 이간에도 격(格)이 있다. 특히 공직자들이 정치공작이나 그 밖의 여하한 행위로, 국민과 국가를 멀어지게 하는 일은 최악이다. 진실을 제보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오히려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이설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요구와 본인의 안위를 위한 일이라면 부정한 일이다.

그래서 제보자의 평소 언행이 중요한 법이다. 부정과 결탁한 삶을 살아온 자의 제보(설사 진실이라 할지라도)가 얼마나 신빙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진실에 다가설수록 아프고 쓰린 법이다. 하지만 우리가 진실을 외면하면, 더 오랜 시간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동족상잔의 비극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민주항쟁의 기록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 생채기로 남아 있는가. 진실을 앞두고 무엇이 두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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