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오 만원 클럽
[문화칼럼] 오 만원 클럽
  • 승인 2019.01.09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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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수성아트피아 관장)


가끔씩 ‘오 만원 클럽’ 이라는 이름으로 여행을 떠난다. 모임의 기본 조건은 이렇다. 대구를 떠나서, 그 계절에 맛볼 수 있는 건강한 먹거리(이것이 첫째 조건이다)를 찾고 두 어 시간 걷기 좋은 길이 있는 곳으로 떠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서 너 명이서 각자 오 만원씩 경비를 부담한다. 이 돈으로 교통비와 점심 저녁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와 메뉴를 정한다. 물론 고정 멤버는 없다. 계절 따라 몇몇이서 의기투합하여 맛있는 음식과 낯선 풍경을 찾아 먹고, 걷는 기쁨을 누리려 떠난다.

새해 들어 첫 여행지를 부산으로 정했다. 지난 주말 그날따라 초미세먼지가 심했지만 길을 나섰다. 애당초 거제 방면으로 갈까 했지만 우연히 부산에서 두 분이 합류하게 되어 그곳의 먹거리와 풍광을 즐기기로 했다.

최백호가 부른 ‘청사포(靑沙浦)’ 라는 노래가 있다. “해운대 지나서 꽃피는 동백섬을 지나서, 달맞이 고개에서 바다로 무너지는 청사포 ---” 청사포 가는 길안내 같기도 한 이 노래 가사 “바다로 무너지는” 표현처럼 달맞이 길에서 언덕 아래로 내려가면 빨갛고 하얀 쌍둥이 등대가 아름다운 청사포가 나온다.

최백호의 말에 의하면 6~70년대 청사포는 부산에서 외진 곳이라 버스가 일찍 끊겼다. 그래서 오히려 청춘들의 데이트 장소로 인기였단다. 청사포라는 곡은 이곳의 변한 모습과 그 시절 젊은이들의 사랑을 노래한다.

해운대 끝자락 미포에서 청사포로 가는 길은 세 갈래다. 옛 동해남부선 폐 선로를 따라 걸어가는 길이 인기 코스다. 다만 지금은 초입에서부터 공사로 길이 막혀있다. 달맞이 길 큰길로도 갈 수 있다. 이 길 따라 핫 플레이스 들이 죽 늘어서 있다. 그리고 달맞이 길 중간에서 갈맷길로 접어들면 발아래 바다를 두고 제법 울창한 숲길을 걸을 수 있다. 이렇게 걷다보면 곧 쌍둥이 등대가 보인다.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인 등대 여행도 가능하다.

동해와 남해가 만나는 ‘대변항(大邊港)’ 이곳은 분위기가 젊다. 화려하지 않지만 소박하고 깔끔한 예쁜 카페들이 인상적이다. 특히나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 부부처럼 보이는 사장님들의 세련된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해 보인다. 좁지만 삼층으로 된 한 카페에 들렀는데 최근에 마신 커피 중 단연 최고의 맛이었다. 내부 인테리어도 간결하고 편안하게 되어있어 햇살 좋은 창가에서 바다를 보고 있자니 일어서기 싫을 정도였다.

애당초 거제로 길을 잡으려 한 이유는 물메기를 먹기 위함이었는데 우연히 이곳 대변항에서 물메기탕 간판을 발견했다. 아! 완벽한 강릉 성원식당의 곰치국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맛이었지만 그래도 귀한 음식을 맛나게들 먹었다.

저녁은 청사포의 명물 조개구이로 했다. 대구남자는 비빔밥도 싫어한다는 말이 있다. 비비는 것도 귀찮아해서다(전혀 근거 없는 얘기다). 거기에 비하면 조개구이는 대단히 성가시다. 하지만 이번 여행처럼 서로 낯선 얼굴도 있을 때, 이렇게 굽고 자르고 하는 행위가 거리감을 좁혀준다.

돌아가는 길에 달맞이 길 커피숍에서 밤늦도록 긴 대화를 나눈다. 국악인, 오케스트라 지휘자 그리고 성악가와 나(나 역시 성악가 이긴 하지만) 이렇게 서로 다른 전공과 서로 다른 곳에서 일하는 우리 네 사람은 나라걱정에서부터 세상살이와 예술에 대하여 종횡무진 거침없는 대화를 나눈다. 대화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순간이 소중하기에, 특히나 멀리 있는 사람과 같이하는 자리여서 더 그렇다.

오 만원 클럽은 서 너 명이 함께하는 단출한 구성이기에 좋다. 서로를 좀 더 깊이 바라 볼 수 있고 음식메뉴나 행선지 선택, 변경이 자유롭다. 나는 혼자서 여행을 잘 다니는데 보통 제철 음식은 일인분씩 팔지 않는다. 이것이 혼행의 유일한 단점이다. 거기에 비해 이러한 구성은 먹거리를 뭐든지 즐길 수 있어 좋다. 많지 않은 경비로 하루를 건강히, 즐겁게 보낼 수 있다. 게다가 단체 여행의 소란스러움도 피할 수 있으니 이래저래 장점이 많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여행의 매력은 현지에서의 즐거움 보다는 돌아 왔을 때 다시금 배어나오는 잔잔한 여운에 있다. 이것의 농도는 짙지 않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나라 좁다 하지만, 사는 동네만 벗어나도 분위기가 다른데 차로 한 두 시간 나가면 색다른 감흥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삼천리강산 참 갈 곳이 많다.

“새해엔 다들 건강히, 열심히 다니시며 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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