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회화처럼, 회화는 사진처럼
사진은 회화처럼, 회화는 사진처럼
  • 황인옥
  • 승인 2019.01.09 2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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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문101, 윤영화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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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유산-잔해’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윤영화 작가.


유산-잔해1704
윤영화 作 ‘유산-잔해’.



사진·그리드 망 혼용 작업
장르간 개념 경계 허물고
‘사진회화’ 영역 일궈내
씻김굿 부산물 ‘소금·재’로
삶과 죽음 성찰 예술로 승화


미디어의 성장은 미술계에도 대변혁을 몰고 왔다. 미디어를 활용한 작품들이 쏟아졌고, 미디어 작가들의 유명 미술관 초대전도 어렵잖게 볼 수 있게 됐다. 이 시기 미디어 작업들이 봇물처럼 터지는 시류를 조심스럽게 지켜보던 이가 있었으니, 작가 윤영화였다. 작가가 91년도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날 때만 해도 회화가 강세였다. 그러나 2002년 귀국할 즈음에는 상황이 급변했다. 해외는 물론이고 국내도 미디어 작업들이 일반화됐다. 회화 작업을 주로 했던 윤영화는 미디어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오히려 “미디어와 차별되는 회화의 속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자신의 전시 개막식 참석을 위해 대구를 찾은 작가가 “미디어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오히려 회화의 속성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고 고백했다.

‘회화의 속성에 대한 질문’은 회화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출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질문이 순수 회화와 결별하는 출발선이 됐다. 회화의 속성을 탐구하던 초기에는 사진과 회화의 융합이 시도됐다. 회화 같은 풍경을 촬영해 인화한 사진 위에 속이 훤히 보이는 바둑판 모양의 망을 씌웠다. 물감이 주는 회화의 촉감을 그리드 망의 촉감을 통해 사진에 차용한 것. “사진에 그리드 망을 씌웠더니 회화성을 확보했어요. 그 느낌에 매료되어 7~8년을 사진과 그리드 망을 혼용했죠.”

사진과의 만남은 우연히 찾아왔다. 2002년 귀국 후 베니스 비엔날레를 보기 위해 베니스를 여행 중이었는데, 어느 우중충한 날 강가에 두 대의 배가 어깨를 맞대고 물결에 일렁이는 모습을 보게 됐다. 마치 배 두 대가 속삭이 듯 애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의식중에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1년 뒤 이 사진과 그리드 망을 조합한 작품을 선보였다. 그리드 망은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을 나누는 경계였다. 그가 사진과 그리드 망과의 만남으로 탄생한 작품을 “사진회화”라고 명명했다. “그리드 망은 경계였어요. 망이 사진을 회화와 연결했죠.”

회화 작업에만 몰두 할 때도 단순 대상 재현에는 관심이 없었다. 개념적이나 철학적인 주제들을 주로 탐닉했다. 특히 상극의 개념을 조정하고 화해시키는데 시간을 할애했다. 재현과 표현, 이미지와 물질, 실재와 환영, 성(聖)과 속(俗),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가변성과 불변성 등의 상반된 개념들에 대한 조정이었다. 물론 조정과 화해의 끝에는 합일에 대한 희망 어린 염원이 있었다.

사진 역시 단순 재현 대신 회화의 표현법으로 접근했다. 카메라를 빛에 과도하게 노출시키는 방법과 사진을 촬영하는 시점의 환경과 작가의 움직임 등을 활용해 피사체의 색감과 형태를 왜곡시키며 회화적인 표현을 배가했다. “사진과 그리드 망을 통해 사진과 회화라는 장르간의 화해, 삶과 죽음·이승과 저승이라는 개념 간의 조정을 시도했죠.”

그리드 망을 통해 사진의 회화 가능성을 모색하는 한편, 사진에 페인팅을 가하는, 보다 직접적인 화해 제스처도 시도했다. 회화의 속성에 대한 질문이 계속해서 확장되던 시기였다. 그러던 중 예기치 않은 교통사고가 생겼고, 그의 육신은 만신창이가 됐다. 부산과 서울을 오가는 투병생활이 이어졌다. 책을 태운 재를 몸에 바르고 소금으로 씻어내는 퍼포먼스는 그 시기에 발표했다. 그에게는 ‘씻김굿’과도 같은 퍼포먼스였다.

“소금은 바닷물이 증발하고 남은 종국의 진료처럼 다가왔어요. 타고 남은 재도 마찬가지였죠. 제게 소금과 재는 영적인 유산처럼 인식됐죠. 그런 개념을 투영하다 보니 퍼포먼스가 사고 이후의 상처를 상처를 씻어내는 일종의 씻김굿 역할이 됐죠.” 이후 퍼포먼스는 평면작업으로 확장됐다. 퍼포먼스의 결과물인 재와 소금을 평면화했다.

상반된 개념의 화해를 이끌어 합일에 도달하려는 정서의 밑바닥에는 종교적인 성찰이 있다. 삶과 죽음, 남겨진 것과 남겨질 것 등의 개념은 모두 종교적인 문제의식의 다른 표현들이다. 하지만 작가는 “종교 체계에 대한 대변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인간은 약하기 때문에 종교적일 수밖에 없어요. 인정하지 않아도 불완전성은 존재들에는 분명히 있죠. 저는 그 이야기를 하려 하죠.” 전시는 갤러리 문101에서 16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윤영화는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 및 파리 제1대학교 조형예술학과 DEA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8번의 개인전과 대구 인·텍트, 바다미술제, 부산비엔날레-본전시, 중국칭따오비엔날레,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 광주국제현대미술제, 금강자연비엔날레등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현재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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