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토', 자유와 저항을 노래하던 영웅...짧아서 더 찬란했던 그의 삶
'레토', 자유와 저항을 노래하던 영웅...짧아서 더 찬란했던 그의 삶
  • 배수경
  • 승인 2019.01.10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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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최의 청춘 그린 음악영화 ‘레토’
레토
 

지나고 난 뒤에 돌아보면 청춘은 삶의 가장 반짝이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 순간을 사는 그들은 힘겹고 불안하다. 또한 청춘은 시작하는 순간이다. 영화 ‘레토’는 전설적인 밴드 키노의 리더이자 러시아의 음악영웅 빅토르 최의 청춘을 그리고 있다. ‘레토’는 여름을 뜻하는 러시아어이다. 짧은 러시아의 여름처럼 짧아서 더 찬란했던 그의 삶과도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영화 속에서 우리는 1981년 여름, 음악을 시작하는 19살 청년 빅토르 최의 풋풋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1980년대 냉전시대의 소련에서 자유와 저항을 노래했던 그는 국민적인 영웅이었다. 펑크록 스타일의 그의 음악은 서구의 록과는 다른 느낌으로 당시의 젊은이들을 흔들어 놓았다. 인기의 절정에서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는 여전히 러시아의 전설이기도 하다.

영화 ‘레토’에서는 전설이 된 그가 아니라 뮤지션으로 처음 발을 내딛는 짧은 시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전기 영화를 기대했다면 아쉬울 수 있다. 온전히 빅토르 최에게 포커스를 맞추지도 않는다. 빅토르 최와 힘께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이끌어준 당대의 록스타 마이크, 그리고 마이크의 아내이자 뮤즈였던 나타샤 세 인물이 서로를 바라보며 성장해가는 순간의 기록이라고 보면 된다.

서구의 사상과 문화는 벌써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여전히 당의 이념과 체제에 맞춰 가사 하나까지도 검열을 받아야 했던 시절,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록클럽의 공연장면은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자유와 저항의 음악인 록음악을 들으면서 좋아하는 가수에게 대놓고 환호하거나 플래카드를 들어 마음을 전할 수도 없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음악을 들으며 발로 박자를 살짝 맞추는 것 정도일 뿐이다.

청춘의 뜨거운 열정을 흑백화면 속에 가둬놓은 듯한 영상은 억압의 시대를 보여주기에는 훌륭한 장치로 보인다. 흑백 화면이지만 중간중간 독특한 화면과 함께 이기팝의 ‘더 패신저’, 루 리드의 ‘퍼펙트 데이’ 등 서구의 록음악을 뮤직비디오처럼 끼워 넣었다. 황당한 전개와 애니메이션 같은 연출에 ‘이건 뭐지?’하며 관객이 당황스러워 할 즈음, ‘이건 없었던 일’이라고 일깨워주는 해설자가 등장하는 것도 흥미롭다.

세 명의 주인공이 처음 만났던 바닷가 장면은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청춘의 특권임을 보여준다. 노래부르며 음악을 이야기하다 알몸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모습은 날 것 그대로 청춘의 모습이다.

2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빅토르 최로 캐스팅된 유태오는 그의 젊은 시절 모습과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영화 속 러시아어 대사와 노래는 더빙으로 이루어졌지만 그걸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입모양을 맞춰 연기를 했다는 것도 놀랍다.

영화 ‘레토’는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을 읊조리면서 지나온 청춘의 한 순간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우리나라에서 음악영화는 흥행에 거의 실패하는 법이 없다. 비록 수상은 못했지만 제 71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으로 기립박수를 받은 바 있는 ‘레토’가 음악영화 불패 신화를 이어갈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될 듯 하다. 배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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